2024.12.17 김경미 <12월의 시>
겨울철이면 고소한 누룽지가 종종 생각나는데요, 전기밥솥의 밥은 누룽지를 만들기 부적절해서 저는 작은 무쇠솥에 밥짓기를 좋아하지요. 어제도 솥에 쌀을 앉히고 알타리 무와 김장배추를 분산 배치하고 나니, 뽀글뽀글 밥물이 올라오면서 솥단지 뚜껑이 신호를 보냈지요. 아주 어린시절, 할머니께서 정지(부엌) 부뚜막 위 무쇠솥뚜껑을 비스듬히 내려 앉힌 후 커다란 나무주걱으로 쌀이 익을때까지 ’알 수 없는 주문‘과 함께 밥을 지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렇게 순간순간 떠오르는 지난일들이 모여서 또 하루를 살게하는 에너지와 미소를 만들어줍니다.
어제 말씀드린 알타리 무를 친정엄마 불편하실까봐, 혼자 담아볼까도 생각했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음식장인 지인께 전화를 드렸어요. 대뜸 ’무 김치 때문에 전화하셨냐고...‘ 아침편지를 보셨다고 하시며 바로 가져오라고 했지요. 염치 불구하고 무 푸대를 가져가서 무 김치담기 모드로 자세 전환하니, 어찌나 어설퍼보였던지 저도 그분도 웃음이 나오더군요. 하여튼 1시간여 만에 아주아주 맛있는 알타리 무 김치를 뚝딱 하고 만들어 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붉은 윤기 자르르하게 담은 김치는 엄마와 동생에게도 드리고, 책방, 학원에도 남겨놓고, 알타리 무를 주신 분과 김치 담아주신 분에게 수육이라도 해서 드시라고 고기를 조금씩 선물하고 나서야, 맘이 맑고 푸른 하늘처럼 펼쳐졌답니다. 사람의 정은 역시 움직여야 더욱 많이 쌓이는 법이죠. 마음 속에만 있으면 잘못 고인 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어제도 좋은 사람들과 점심을, 오늘도 편한 사람들과 또 점심을 먹어요. 12월의 마지막을 향해 카운트 다운버튼이 눌러졌는지, 한 해동안 저를 만나고 지나간 사람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라도 감사 인사를 해야할 시간이 왔기에, 부지런히 짬을 내어 얼굴보고 다닙니다. 머릿속으로는 새해에 또 어떤 모습으로 <봄날의 산책> 얼굴을 보여줄까도 고심하면서요...^^
김경미시인의 <12월의 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12월의 시 - 김경미
열심히 해도 않되는 일은 버리자
멋대로 하지 말았어야 했던 일과
뜻대로 고집했어야 했던 일 사이로
오가는 후회도 잊자
그 반대도 잊자
오래된 상처는
무딘 발 뒤꿈치에 맡기고
허튼 관계는
손 끝에서 빨리 휘발 시키자
빠르게 걸었어도
느리게 터벅였어도
다 괜찮은 보폭이었다고
흐르는 시간은 언제나
옳은 만큼만 왔다고 믿자
어떤 간이역도 다 옳았다고 믿자
올해의 종착역 12월도
열심히 살기보다
이제는 잘 살자
사진제공, 박선희 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