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21 김복희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날은 길어지는데, 새벽손님을 맞이하는 자세는 늘정거려지고... 요즘 계속 늦잠에서 헤롱거리다가 좌판기를 만납니다. 아무래도 머릿속에 서둘러지는 일들이 쌓여가니, 생각의 실타래는 자꾸만 자기들끼리 부딪히고요. 잠시 글자와 말소리를 모두 물리치고 피아노 단음소리만 틀어놓고 한참을 있었습니다. 오늘 할 일 딱 한가지만 추려내면서요.
하지만 제가 한가지 일만 해야지 한다고 해서, 정말 그것으로 일이 멈춰질까요. 여전히 세상은 서로의 작용을 주고 받으며 돌아가기에, 어느 시점, 어느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지, 그 일이 좋은 일일지 그렇지 않을 일일지 도저히 알수 없지요. 매순간 그냥 묵묵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할 수 밖에요.
어제는 딸이 한강작가의 책 몇 권을 보내달라하면서 주고 받은 통화,,, 요즘 책을 읽는 재미가 정말 좋다고 하더군요. 특히 지금 젊은 세대들은 미디어의 영향하에 살면서 현 정부 사태에서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한강작가 작품의 일부구절들을 들을거예요. 노벨상수여라는 어머어마한 일도 있었겠지만 매일 주요미디어에서 오르내리는 그의 작품 속 명언들이 거꾸로 젊은 세대들을 독서의 장으로 모아 불러주는 이 현상만으로도 세상을 정말 알수 없는, 불가사의한 곳입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고전톡방에서는 논어구절이, 시필사톡방에서는 시인의 시가 올라오는군요. 제가 주관하는 톡 방에 있는 분들의 지적 탐구심과 지구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자세로 매일을 성실히 살아갑니다. 저는 그 중간에 서서 실과 실의 시작과 끝을 이어주는 중매인에 불과할지라도,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그분들의 ’인(仁)‘과 성(誠)’을 함께 느끼는 것만으로도 저 자신에게 행복한 주인의식을 불어넣으니 감사할뿐입니다. 오늘의 논어구절은 日知其所亡,月無忘其所能,可謂好學也已矣 (일지기소무,월무망기소능,가위호학야이의) - 날마다 그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달마다 그 배웠던 것을 잊지 않는다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이를 수 있다. 자장편 –입니다. 오늘은 필사톡방 문우께서 올려주신 김복희시인의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좋아서 함께 들어보시게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 김복희
쌀 씻는 소리
오이를 깎는 소리
수박을 베어 무는 소리
미닫이문이 드륵드륵 닫히는 소리
딱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지고 갈까
앞으로 내가 듣지 못할 것
남도 듣지 말았으면 하는 것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조용히 우는 소리
틀어놓은 텔레비전 위로
막막한 허공의 소리
손톱으로 마른 살갗을 긁는 소리
죽은 매미를 발로 밟는 소리
이것 중에 무엇이 좋을까
잠시 고민했다
이런 거 맞나요?
나는 물었고
대답은 없었다
누가 벌써 대답을 가져간 것일까
다 두고 갈 수는 없나요?
아주 조용했다
누가 벌써 가져간 게 확실했다
가질 수 있는 것을
가지지 않을 때의 기쁨
잠든 사람이 따라 하는
죽은 사람의 숨소리
죽은 다음에도 두피를 밀고 나오는 머리카락 소리
벌려놓은 가슴을 실로 여미는 소리
세상에서 소리를 하나… 데리고 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할래?
<참고, 2024 현대문학상 수상작>
사진, 지인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