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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아침편지310

2025.2.22 양광모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by 박모니카

평생 살아온 자리를 떠나야 하는 일, 몸이 먼저 기억할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요. 어제 윤씨가 처음으로 형사재판장에 서는데, 자기자리를 찾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증인석에 앉았었다는 보도에 마음이 쓸쓸해졌습니다. 게다가 그 법정에서는 이름부터 하나하나 자신을 말해야 하는 기초적인 과정이 있고 헌법재판소(변호인들에 둘러싸여 예를 받는곳)와는 매우 다른 분위기여서, 정말 죄인같은 생각이 절로 들고 어떤 힘에 압도되는 곳이라고 하네요.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저도 학원운영 20년이 넘다보니, 집보다 더 편할때도 있고, 타지에서 돌아올 때 으레 네비게이션에 학원을 설정하지요. 최근4년 사이에 그런 곳이 하나 더 늘었는데, 바로 책방입니다. 제 머리속 네비게이션 지도에 책방이 있는 말랭이마을이 고정돼 있어서, 때론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저를 보고 놀랄때도 있답니다.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여러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어제는 ‘책방에서 놀기’를 내세우며, 마음속으로 책방손님처럼 굴었습니다. 이책 저책 들여다보는 와중, 엄마에게 읽어보게 할 시집 한권을 먼저 읽어갔지요. 오늘은 고향섬에 가자고 했는데, 바람덕분에 배도 뜨지 않는다 해서, 엄마랑 시 몇편 읽으며 수다나 떨어볼까 합니다. 어떤 시에 어떤 말씀이 딸려나올지 기대하면서요^^

이삼일 바람꽤나 불며 차갑게 사변을 에워싸더니 창밖에는 흰눈으로 덮인 지붕들이 먼저 보이네요. 후배님이 새벽 산보를하자 했는데, 몸이 으스스 , 자꾸 다시 눕고 싶어서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데 제 의식은 말합니다. ‘만나보지 않고 판단하지 말라. 일어나 나가라.’ 라구요. 오늘의 논어구절은 ‘先行其言而後從之(선행기언이후종지) - 먼저 자기 말을 스스로 실행하고 그다음에 타인으로 하여금 자기를 따르게 하는 것이다. 위정편-입니다. 매일 시를 보내주는 양광모시인의 시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한다>를 들려드립니다. 봄날의산책 모니카.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 양광모


어제 걷던 거리를

오늘 다시 걷더라도

어제 만난 사람을

오늘 다시 만나더라도

어제 겪은 슬픔이

오늘 다시 찾아오더라도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식은 커피를 마시거나

딱딱하게 굳은 찬밥을 먹을 때

살아온 일이 초라하거나

살아갈 일이 쓸쓸하게 느껴질 때

진부한 사랑에 빠졌거나

그보다 더 진부한 이별이 찾아왔을 때

가슴 더욱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아침에 눈 떠

밤에 눈 감을 때까지

바람에 꽃 피어

바람에 낙엽 질 때까지

마지막 눈발 흩날릴 때까지

마지막 숨결 멈출 때까지

살아 있어 살아 있을 때까지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살아있다면

가슴 뭉클하게

살아있다면

가슴 터지게 살아야 한다

2.22 양광모1.jpg
2.22양광모2.jpg

사진, 지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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