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28 장재원 <봄의 아랫목>
이월의 ’끝날‘ 혹시라도 해야 할 일들 중 잊었던 것이 있는지, 한달 일정표를 들춰봅니다. 금주간은 마무리 할일도 많았고 준비해야 할 일도 많았습니다. 특히 약속을 놓칠까봐 일정표를 보고 또 보면서 확인했지요. 매년 그렇지만 이 때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원의 환경을 통찰하는 일. 학원시스템은 한달 단위여서, 휴원생도 있는데요, 어제는 만 4년을 공부하면서 중학생이 되는 학생 하나가 부득히 학원을 멈추게 된다고... 학생도 학부모님도 고마운 분들이었어요. 숙제 한번 거르지 않고, 제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가장 잘 먹던 학생. 마지막 인사도 없이 가버렸더군요. 어머님께 전화해서 많이 아쉽다고, 용돈 조금 보내니 꼭 전해달라고,,, 너무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말씀 하시더군요. 저의 한끼 외식비를 줄이면 학생가족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겠지요.^^
바로 이어서 또 다른 신입생이 오면서 새로운 인연을 맺었지만, 사람 관계라는 게 언제나 그렇듯이 오래된 인연에 더 애정이 가는 법이라 신입생에게도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오늘 또 다른 인연들과 잠시 끝을 맺는 날, 바로 1-2월동안 진행했던 고전 논어 필사팀입니다. 줌을 통해 그동안의 필사활동이 어땠었는지 대화하기도 했지요. 각자가 기억에 남아서 말로 뱉을 수 있는 한자어도 말해보고요. 논어라는 책 한권을 2달동안 만져본 것 만으로도 모두 행복한 시간이었다니, 저 역시도 참 감사할 일입니다. 3월 봄에는 물리적 환경이 서로 바쁘니, 잠시 쉬었다가 다른 교재로 다시 만나볼수도 있겠지요.
어제는 책방손님 한분(남성분)이 근대시인의 시집 몇 권을 신청하셨어요. 책방의 매니저와 얘기하면서, ’저에게는 꿈이 있지요. 책방이 조금만 더 크다면, 공간 한 곳을 완전히 시 영역으로 채워서, 시를 향유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고 싶어요‘ 이렇게 말했지요.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하고 싶은 꿈을 꾸고 산다는 것은 매우 쉬운 일. 오늘도 이런 꿈을 꾸며 보내겠지요. 이월 끝날, 좋은 생각, 멋진 꿈 한마디씩이라도 꼭 챙겨보세요. 오늘의 논어구절은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与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 - 나는 매일 세 번 자 자신을 돌이켜본다. 남을 위해 일하면서 정성을 다했는가? 벗과 사귀면서 신의를 다했는가? 배운 것을 몸에 익도록 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입니다. 장재원시인의 <봄의 아랫목>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봄의 아랫목 – 장재원
천지에 미만한 봄기운은 얼음나라에도 찾아와
지하철 찬 콘크리트 바닥에 잔뜩 웅크려
시들새들 죽은 싹을 다시
지상으로 밀어 올렸네
겨우내 세한도 풍경처럼 서 있어야 했던 소나무가
어느 날 씻긴 난촉들같이 푸른 기운을 새로 띠고
멀리 언 땅 속 깊이 뿌리를 뻗어 함께
그림 속 풍경으로 웅크려 있어야만 했던 사내를
연초록 색기色氣 오르는 자신의 가지 아래로 초청한 것이네
빙하의 바람길 뚫린 지하 동굴에서 올라와
따뜻한 봄의 아랫목 온기로 되살아난 사내는
나무에 몸을 기대
눈꺼풀 위로 쏟아지는 화사한 빛의 세례에
행복하네
오래간만에 신용불량자 훈장도 내동댕이치고
돈 번다고 떠난 아내
복지원에 맡겨진 아이들도 모두 불러 모은
따스한 안방에
휘파람새, 산비둘기는
연듯빛 봄 잎사귀 펼치는 희망 노래 들려주네
저만치 목련나무도
겨울 딛고 올라온 노숙자 아저씨
잘 버티었다고, 새 봄 와 일거리 많아질 거라고
눈부시게 맛깔스러운 찐 달걀 무더기로 매달아
속껍질 벗기고 있네
사진, 지인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