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88

2025.7.15 문정란 <불혹의 연가>

by 박모니카

창문을 여니, 갈바람인양 쓸쓸한 기운이 새벽 한 가운데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네요. 밤새 내린 작은 소슬비덕분에 식혀진 불볕더위들. 왠지 이불을 당기는 제 마음은 6월 윤달이 들어있어 길어지는 여름을 붙잡고 오랫동안 정열의 태양아래서 무성한 녹음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여름기운에 보양 할 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일찍 눈을 떠서 오늘의 양식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금주간은 할아버지 제사, 아버지 제사에 엄마의 땀방울이 송글송글 하겠지요. 오늘 목욕 동행으로 수다를 좀 떨어야, 당신의 번잡한 마음도 풀어지고 기꺼운 맘으로 조상을 만나러 후손들이 올 것입니다. 부모가 없으면 형제애도 팍팍해지는 것이 마치 윤기 없는 밤고구마들끼리만 모여있는 모양이지요. 제사를 주관하는 엄마가 계셔서 얼마나 큰 축복인지 해마다 당신께서는 육체적으로 힘이 드시겠지만, 저는 이런 집안 행사들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 할 정도로 부모 형제들이 모여드는 것이 참 좋습니다.


텃밭은 갈때마다 제 노고를 과찬으로 상납하여, 어제도 감자와 오이를 잘 삶고 다져서 샌드위치용 감자샐러드를 만들었답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맛보이고 싶은 제 열정, 두 시간 가까이 싱크대를 떠나지 않고 간식을 만들었지요. 때때로 생각하는데, 글쓰기 이외에 하고 싶은 취미 하나를 더 고르라면 ’음식만들기‘입니다. 혹자는 이런 저를 보고 ’너무도 의외인데...?‘라고 말하겠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엄마 밑에서 소위 ’살림살이 잘 하는 것이 여자가 할 일 중의 하나‘라는 엄마의 기준으로 세뇌되었답니다.^^ 요즘세상에는 웃기는 말이라고 하겠지만, 사람이 사는 일 중, 으뜸이 먹는 일이니, 이왕이면 음식 잘 만드는 취미를 갖는 것도 멋진 일이지요. 얼마전 내일 배움카드 라는 것도 만들었으니, 시간을 잘 활용해서 한식이나 제과제빵 요리과정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훅 하니 들어오네요.~~~


벌써 칠월도 중순이 넘어가네요. 휴가를 정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요. 일상이 매일 휴가처럼 보내는 저는 특별히 어느 곳을 지정하진 않지만, 추억할 만한 휴가의 모습 한 장 정도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라는 욕심이 생기고요. 이왕이면 짧아도 아들 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보자고 의견제시를 할까 하는데,,, 바쁜 청춘들의 생각은 어떠실지 궁금하네요. 얼마 전 지인이 낭송하셨던 시, 문정란 시인의 <불혹의 연가>가 떠오르네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불혹의 연가 – 문정란


어머니

이제 어디만큼 흐르고 있습니까


목마른 당신의 가슴을 보듬고

어느 세월의 언덕에서

몸부림치며 흘러온 역정

눈 감으면 두 팔 안으로

오늘도 핏빛 노을은 무너집니다


삼남매 칠남매

마디마디 열리는 조롱박이

오늘은 모두다 함박이 되었을까

모르게 감추어 놓은 눈물이

이다지도 융융히 흐르는 강

이만치 앉아서 바라보며

나직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보셔요, 어머니

나주벌 만큼이나 내려가서

3백리 역정 다시 뒤돌아보며

풍성한 언어로 가꾸던 어젯날

넉넉한 햇살 속에서 이마 묻고 울고 싶은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흐른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

새끼 네명을 키우며

중년에 접어든 불혹의 가을

오늘은 당신 곁에 와서

귀에 익은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아직도 다하지 못한

남은 사연이 있어

출렁이며 출렁이며 흐르는 강

누군가 소리쳐 부르고 싶은

이 간절한 마음은 무엇입니까


목마른 정오의 언덕에 서서

내 가슴 가득히 채우고 싶은

무슨 커다란 슬픔이 있어

풀냄새 언덕에 서면

아직도 목매어 흐르는 강

나는 아늑한 곳에서 회귀하는

내 청춘의 조각배를 봅니다


이렇게 항상 흐르게 하고

이렇게 간절히 손을 흔들게 하는

어느 정오의 긴 언덕에 서서

어머니, 오늘은

꼭 한번 울고 싶은 슬픔이 있습니다

꼭 한번 쏟고 싶은 진한 눈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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