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8.3 도종환 <목백일홍>
꽃 한 송이 피어나 설마 백일이나 가리야... 어제 본 붉은 꽃 한 송이가 오늘 본 그 꽃이 아니라니. 너울너울거리며 서로 얼굴을 포개고 무슨 밀어를 저리도 나누는지. 백일 아니라 백 년을 서로 사랑하자 말하는 거겠지. 이 염천에 사람보다 질긴 목숨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말하며 더위에 숨 죽어 있는 작은 키의 배롱꽃들을 걱정하는 엄마를 안도시켰답니다.
드디어 배롱나무 꽃(목백일홍)의 붉은 함성이 천지를 덮기 시작했네요. 어느샌가 군산 가로수에도 배롱꽃들로 가득하여 한 여름 7월과 8월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어요. 사방이 꽃이 피어 다 같은 꽃처럼 보일지라도, 한 송이도 똑같은 꽃이 없는 것은 그를 바라보는 내 맘이 다르고, 내 시절이 다르고 함께 간 내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라. 학원 방학이야 진작에 끝나서 일요일도 보충이 있지만 솔솔 하게 바람을 담고, 가볍게 배롱꽃 사진이나 한 장 찍으러 갈까 보다 싶네요.^^
머리맡에 놓인 <한시로 읽는 우리 꽃 이야기> 책을 펼치니,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이 읊은 <비해당사십팔영>의 소리가 들려오네요.
昨夕一花衰(작석일화쇠) 어제저녁 꽃 한 송이 지더니
今朝一花開(금조일화개) 오늘 아침 꽃 한 송이 피었네
相看一百日(상간일백일) 서로 일 백일을 바라볼 수 있으니
對爾好銜杯(대이호함배) 내 너를 대하며 술 한 잔 하리라
화무십일홍을 가볍게 제끼며 백일이 넘도록 붉은 사랑 빛으로 사람의 마음을 물들이는 배롱나무꽃을 찾아 떠나보세요. 새벽에 톡 창을 열어보니 문우께서 전남 담양의 명옥헌 배롱나무 군락 사진을 보내주셨네요. 그곳이 멀다면, 가까이 30분 이내에 서천의 문헌서원부터 군산의 옥구향교에 이르기까지... 가고 싶은 곳이 많이 있습니다. 도종환시인의 <목백일홍>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목백일홍 - 도종환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리워지는 꽃 같은 사람 없는 게 아니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사진제공. 박세원 문우. 담양 명옥헌 배롱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