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115

2025.8.11 서수찬 <이사>

by 박모니카

결혼할 때 준비하는 물건 중 하나가 ‘농(籠)’이었는데요. 저도 23년간 쓰다가 작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결국 버렸습니다. 집이 작아서 놓을 곳도 없었지만, 몇 번 이사 다니면서 부서진 부분들도 있었고, 또 예전 같지 않게 농 속에 옷이나 이불을 많이 넣어두는 시절도 아니고 해서요. 그런데, 얼마 전 어떤 분이 이사 가면서 아주 하얀빛의 농을 놓고 가신다 하길래, 제 욕심에 받았지요. 어제는 그 농을 작은 공간으로 옮기는데 후배님들을 엄청 고생시켰네요. 점심 한 끼 대접했지만 미안하면서도 정말 고마웠어요.


저는 물건에 욕심이 없는 편이라고 늘 말해왔는데, 살림도 제대로 안 하면서 그릇, 책꽂이 등을 받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엄마를 닮아서인지 의외로 살림살이 정리하는 것도 즐겁고요. 소위 자개농(조개껍질로 무늬를 새긴 장롱)을 매일 번들번들하게 닦고 어루만졌던 엄마의 손길이 생각나는데요. 혹시나 엄마 안 계시면 자개농 수혜자는 제가 1번이지요. 하긴 요즘 젊은 사람들이 가져갈 생각도 안 하겠지만요.... 그러려면 집도 좀 커져야 하는데, 어느 날 재물복이 좀 터지려나... 집 커져야 하는데...라는 생각으로 괜스레 즐거워지네요.^^

얼마 전에도 재활용터에서 책꽂이 몇 개를 가져왔는데, 완전 새 상품 같았지요. 이사철이 되거나, 신생아파트들이 문을 열면 기존 아파들에서 대거 쏟아져 나오는 살림살이들... 저는 누군가가 쓴 물건, 그래서 버려지는 물건이면 더 마음이 짠해서 들여다 봅니다. 그 물건의 쓸모를 더 이어주고 싶어서요. 사람이나 사물이나 제 쓸모를 다하지 못하고 버려진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혹시나, 다니시다가 작은 물건들(항아리, 화분, 탁자 등등) 보시거든 제 책방에서 유용하게 쓰도록 하겠나이다.~~~


이제 고등학생들은 개학을 했어요. 어제도 몇 학생들을 만나면서 기분을 물으니, 오히려 기숙사생활을 선택하면서 새 다짐이 생겼다고 하더군요. 개학이라는 두 글자에 새 마음을 다잡고 열공하겠노라고 말하는 학생이 기특 기특,,, 이 학생은 초등시절부터 만났으니, 1학기 총평, 1등급도 찍었으니, 이제 곧 하산할 준비 하거라!!라고 말했답니다. 학생의 누나부터 만난 인연, 매우 성실하고 착한 학생의 등을 토닥였네요. 오늘은 월요일, 또 새로운 요일과의 만남, 새 마음도 넣어서 기쁜 일 만들어보시게요.

서수찬시인의 <이사>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이사 - 서수찬


전에 살던 사람이 버리고 간

헌 장판지를 들추어내자

만 원 한 장이 나왔다


어떤 엉덩이들이 깔고 앉았을 돈인지는 모르지만

아내에겐 잠깐 동안

위안이 되었다


조그만 위안으로 생소한

집 전체가 살 만한 집이 되었다


우리 가족도 웬만큼 살다가

다음 가족을 위해

조그만 위안거리를 남겨 두는 일이

숟가락 하나라도 빠트리는 것 없이

잘 싸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 걸 알았다

아내는

목련나무에 긁힌

장롱에서 목련꽃향이 난다고 할 때처럼

웃었다.

월명 산책 길,, 수국향이 아직도 건재합니다
아들과 시원 달콤한 메밀냉면 먹었는데요 맛 있어요.. 은파의 '진미면'이란 곳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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