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123

2025.8.19 박용래 <가을의 노래>

by 박모니카

“한글을 제대로 쓰고 싶지. 소리 나는 대로 말고, 받침 두 개 있는 글자도 제대로 쓰도록 배우는 것이 제일 좋았어. 우리가 뭔 시를 알었겄어. 다 작가님들이 한글 읽는 것부터 가르쳐줬응게 내 맘 속 소리를 글자로 써본거지. 그게 시인가 어쩐가 모르겄네.”


올해 말랭이마을 어른들의 한글 배우기부터 시 창작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책 한 권 쓰고 싶어서, 인터뷰과정에서 나온 말 입니다. 오랜만에 점심과 후식으로 차담까지... 앞으로 나올 책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져서, 얼마나 열정적으로 당신들 얘기를 하시던지, 배움에 대한 숨은 열망을 다시 한번 느낀 시간이었답니다.


지난주 1차 인터뷰에서 과제를 냈었는데요, ’ 가을 겨울이면 생각나는 소재를 가지고 짧은 글 써오시면 좋겠어요.‘라고 했는데,,, 세상에나, 9명 중 8명이 써오시고, 가장 고령(88세) 어머니는 엄청 미안해하셨어요. 그분은 한글 배울 때 가장 꾸준하게 오랫동안 지도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던 분인데, 혼자는 쓸 수 없어서, 소리를 들려주면 글로 바꾸는 부분을 도와드리기로 하고, 저를 포함 10명의 완전체가 추억할만한 말랭이 시인이야기 책 한 권 만들자고 동의했지요.


동시에 앞으로 더 배우고 싶은 것이 있냐는 질문에, 첫째, 무조건 한글 잘 읽고 쓰기, 둘째, 한자도 배우고 싶고, 셋째, 영어도 배우고 싶다... 등을 말씀하셨는데요. 그중 영어학습에 대한 소망이 많아서 좀 놀랐답니다. 길거리나 TV에서 영어표현이 하도 많아서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고, 우리나라 사람이 왜 우리말을 안 쓰고 영어를 더 많이 쓰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등등의 사설이 길어졌지요. 결국은, 내년 공부 계획으로 영어공부도 한번 설강해 보겠다고 약속했네요. 음식점에 가서 키오스크 사용을 해보았을 때처럼, 몸으로 직접 해보아야 기억에 남는 공부가 된다고 하시면서요... 하여튼 대단한 분들이십니다.^^

책의 구성이 대략 끝났으니, 저도 부지런히 노트북을 울려야겠습니다. 그런데 집에만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 놀멍거리다 아침을 맞는군요. 정신 차려야 가을 에너지로 새 살림을 차릴 텐데요. 할 일은 가을대추알처럼 무수히 쏟아지고 있는데, 다 수확할 강건한 바구니를 들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 미리 염려하며, 마음속에 ’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라는 말을 세뇌시키는 아침입니다. 말랭이마을 어른들의 세월 속 인생이야기를 떠올리면서요. 박용래시인의 <가을의 노래>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을의 노래 - 박용래


깊은 밤 풀벌레 소리와 나뿐이로다

시냇물은 흘러서 바다로 간다

어두움을 저어 시냇물처럼 저렇게 떨며

흐느끼는 풀벌레 소리......

쓸쓸한 마음을 몰고 간다

빗방울처럼 이었는 슬픔의 나라

후원을 돌아가며 잦아지게 운다

오로지 하나의 길 위

뉘가 밤을 절망이라 하였나

말긋 말긋 푸른 별들의 눈짓

풀잎에 바람

살아있기에

밤이 오고

동이 트고

하루가 오가는 다시 가을밤

외로운 그림자는 서성거린다

찬 이슬밭엔 찬 이슬에 젖고

언덕에 오르면 언덕

허전한 수풀 그늘에 앉는다

그리고 등불을 죽이고 침실에 누워

호젓한 꿈 태양처럼 지닌다

허술한

허술한

풀벌레와 그림자와 가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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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말랭이시인2.jpg 올 가을 당신들 이름 석자 쓰여진 책 속에 '나도 시인이야...'를 외칠 준비 마친 말랭이마을 어머님들
8.19말랭이시인3.jpg 말랭이 마을 백대순 어머님 집 대문에 걸린 부부이름 판... 정말 잉꼬부부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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