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7 백승연 <우체통을 바라보며>
가족 친지, 조상님들과 행복한 만남이었겠지요. 이왕이면 밝은 달님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하루 종일 비님만 내리더군요. 오늘도 가을비는 추적추적 온다 하고, 지인들은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고요. 시댁 친정 모두 가까이 있다 보니, 길거리에 버려지는 시간은 없지만, 약간 심심한 추석이었습니다. 덕분에 머리맡에 놓인 책 가져다 줄곧 읽다가, 또 심심하여, 문우들에게 ’ 추석‘을 소재로 한 자작 글 한편씩 올려보시라... 요청도 하고요.^^
어제 읽은 책 중에는 작가이자 요리사인 박찬일 씨의 <교양 한 그릇>이란 책이 있는데요, 처음에는 요리사가 글도 잘 쓰네 했는데, 전직이 기자였더군요. 역시 글 쓰는 사람은 요리글도 잘 쓰네 하면서 쭉 읽었어요. 한국인이 사랑하는 기본 음식 – 짜장면, 떡볶이, 돈가스, 잡채(아직 여기까지 읽음요~~)-에 대하여, 음식의 유래, 음식명의 출발 등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 재밌을 이야기를 매우 다정하고 예의 바른 기법으로 표현해서, 참 재밌게 읽고 있네요.
그중, ’ 잡채(雜菜)‘에 들어가는 당면(唐麪)이 당나라에서 건너온 면이자, 잡채의 ’채‘가 나물도 뜻하지만 ’ 요리’를 뜻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원래 중국잡채는 면이 없고, 소위 중국집 가서 고추잡채를 시키면 나오는 형태(고추등 고기 채소를 볶아 섞고, 꽃빵추가 나옴)가 원본이라네요. 그런데 우리잡채의 특징은 단연코 ‘당면‘에 있잖아요. 19세기, 조선에 화교인들이 가지고 들어온 당면이 보급되면서, 우리의 고유잡채가 만들어졌다 합니다.
명절에 다양한 음식이 있지만, 잡채가 빠진 잔칫상은 상상할 수 없지요. 다른 부재료 없이 당면만 넣어서 만들어도 훌륭한 잡채가 되니까요. 어제 시댁 식사에서도 잡채 한 그릇을 후루룩 먹고 다른 음식에 젓가락을 대었답니다. 책에서 잡채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니, 그 맛이 남다르게 느껴지고, 우리 한식이 K음식이란 타이틀이 붙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아마도 최소 오늘까지는 추석 명절의 분위기 속에 계시겠지요. 아이들이 데이트신청을 해서, 가까운 곳으로 한 바퀴 핑 돌고 오려하네요. 아, 참!! 봄날의 산책에서 행사하는 ’제1회 디카시 공모전‘ 기억하시죠?? 한 열흘 남았으니, 좀 더 부지런히 참여하시고 홍보도 해주세요. 명색이 상금 건 공모전인데, 응모하는 사람이 없어서, 행사가 취소될까 저어 두렵사옵니다.^^
어제 하루동안 힐끔 거리면서 본 사물들 중에, 은행나무, 빨간 우체통, 누런 감, 코스모스, 떨어지지 않은 백일홍 등이 있었죠. 신기하게 다음 시를 읽고 있는데, 이 사물들의 이름이 호출되어 있어서 감정이 묘했답니다. 이 시를 읽는 것이 마치 필연이었던 것처럼요. 군산의 원로시인 백승연시인의 <우체통을 바라보며>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우체통을 바라보며 – 백승연
아직 땡별이 가시지 않았는데
발밑에 감빛으로 물든 단풍이 여기저기 떨어져있다
한낮을 비끼면 서늘한 종아리에 가을 감촉이 휘기는 날
필수품처럼 챙기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카톡카톡 소리는 무심한 채
후미진 길가의 키 큰 코스모스를 바라본다
한들한들 어여쁘구나!
어김없이 계절 찾아 물드는 초가을 색칼
높아진 하늘 아래 길가의 은행나무들은
노랗게 물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붉은 백일홍은 아직 백일을 다 못 채웠나 보다
여름 햇살을 잊지 않겠다는 듯 아직 열렬히 붉다
그래도 가을은 오고 있다
이상하계 가습은 허전해지고 열아홉 살 소녀처럼 애젖해진다.
'나는 할머니가 아니야. 아직 순정한 여자아'하는 듯
입었던 옷을 집어던지고 나체가 부끄러웠는지
옷가게 쇼운도우 속의 마네킹들은 하얀 등과
팽팽한 엉덩이로 뒤돌아 서 있다
텅텅 빈 옷가게 유리문 밑단에는
-롯데 아울렛 결사반대-
포스터처럼 갈겨 쓴 붉은 글씨도 보인다
빈 가게들 앞 횡단보도 곁에 빨간 우체통이
여전히 날 보란 듯 서 있다
지나칠 때마다 보이던 빨간 우체통
그 우체통을 바라보느라면
우체통 구멍 속에 손을 집어넣어 휘휘 휘저어 보고 싶어진다
핸드폰속의 카톡카톡 소리 말고 내게 보내는
만년필로 정성스럽게 쓴 손 편지가 있을 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