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187

2025.10.22 김사인 <조용한 일>

by 박모니카


“자, 옆 친구들과 바꾸어서 단어 채점하자”

“원장님, 뒷면에 쓰여 있는 것은 뭐예요?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라고 쓰여 있어요. 원장님 쓰시는 종이 아니에요?”

이번 달 제가 맡은 초등 6학년 학생들 단어시험을 보는데, 제가 이면지에 프린트를 했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 이면지가 얼마 전 한시예 시낭송팀이 발표한 시를 프린트했던 자료였어요. 이번 기회에 잘 됐다 싶어서, 모두 뒷면을 보라고 했지요. ‘동시나 시를 잘 읽고 기억하면 좋은 대학 간다’라고 꼬셨답니다. 영어보다 우리말이 더 중요한 거라고 하면서요.


학생들 8명 모두 돌아가면서 시 낭독을 했습니다. 윤동주시인의 <자화상>을 읽는 학생은 소리치기를, ‘나 윤동주 알아...’라고 하고요, 이정록시인의 <노루발>을 읽은 학생은 ‘좀 슬프다’라고 하고요, 용혜원시인의 <행복한 날>을 읽은 학생은 친구들의 박수를 받았지요. 차분하게 잘 읽는다고요... 모두 기특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단어시험도 모두 통과했지요.


어려서부터 꼭 교육해야 할 분야 중 한 가지를 꼽는다면, ‘우리 시 읽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는 학교 관계자가 아니라서 기획할 수 없지만, 정규교과과정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학생들에게 시 읽기 문화운동을 적용시킬 수가 있지요. 선생님들께서 귀찮아 하지만 않는다면요... 저같이 사교육현장에서 이런 작은 일만으로도 학생들의 변화를 체감하는데, 학교 공교육 현장에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학생들의 정서와 감성이 얼마나 따뜻해질까요. 하여튼 저는 학원생들이 읽는 시 낭독 소리만 들어도 배가 불러서, 특별한 간식을 주기로 했답니다.


제1회 봄날의 산책 디카시 공모전 작품 전체를, 하나의 통일된 형식에 담아서 작업했고요. 드디어 심사위원님들께 전달했습니다. 이래저래 일 만들기 선수인 제가, 손놀림도 빨라서, 빨리 전달했어요. 그분들께서 숙고하실 시간을 충분히 드리고 싶어서요. 작품을 모두 정리하고 보니, 어찌 다 그렇게 잘 써서 주셨는지요... 제 눈에는 한 개도 부족한 작품이 없어 보여서, ‘아고, 돈 많이 벌어서, 모두 다 상금 주고 싶다’라고 생각했어요.^^ 다시 한번 공모에 응해주신 참가자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김사인 시인의 <조용한 일>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조용한 일 - 김 사인


이도 저도 마땅히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10.22 조용한 일1.jpg
10.22 조용한 일2.jpg

책방 앞 식물들이 다 쓰러졌는데,,, 손톱만한 요 꽃만 이렇게 조용하게 내려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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