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7 신석정 <가을이 지금은 먼 길을 떠나려 하나니>
10월의 마지막 주간 월요일이군요. 성당의 미사 특송으로 <잊혀진 계절>이 흘러나오면서, 아, 진짜로 10월이 갈 준비를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돌아보면 아쉽기만 한 많은 시간들... 그래도 한꺼번에 모아서 농도 진~한 기도를 하기 위해 심호흡도 하고 강론도 열심히 듣고요.
‘하느님도 참 힘들겠다‘ 할 만큼 욕심껏 이런저런 기도를 했는데 오히려 맘이 더 무겁더군요. 세상사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사라지게 될 것은 바로 종교일 거예요. 그래서 ’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 라며, 끊임없이 간구하고 기도하라고 배우나 봅니다.
어젯밤에는 에세이에 실릴 글방 사진들을 쭈 욱 챙겨보았는데요, 1년 동안의 활동이었으니, 사진도 많고, 말도 글도 많았습니다. 저 혼자서 사진들을 넘겨보기에는 아깝고 추억 어린 사진들이 많더군요. 특히 어머니들의 초기 수업 시, 연필을 잡은 손의 떨림이랄지(물론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저는 보이거든요), 점점 변화하는 글씨나 글의 모양이랄지, 또 어머니들의 긴장하는 모습이 점점 편안해져서 웃음기 있는 사진들이 많았습니다.
하여튼 제가 말랭이 마을에서 살면서 한 일 중의 으뜸은 누가 뭐래도 글방수업으로 시를 알게 한 활동들이었던 것 같아요. 제 나이가 있으니, 또다시 그런 에너지를 발휘하라면 아마도 힘들겠지만, 그래서인지, 더 애정이 가고 그리워지는 시간들을 사진으로 만나보았네요.
오늘부터 기온이 뚝 뚝 뚝 떨어진다 하지요. 하긴 10월인데도 반팔이 아직도 제 자리에 있으니, 어서어서 계절이 제 자리를 찾아가야 맞지요. 남편은 미리감치 모과차를 준비해서 제 책상머리에 놔두고요, 저는 머릿속으로 11월 오기 전에 끝내야 할 일거리들을 일과에 써보고요. 오늘부터 11월이 오기 전에 다람쥐 알밤 모으듯, 차곡차곡 아름다운 10월의 체향을 쌓아두시길 기도합니다. 그래야, 빨간 날 수 하나 없이 두 개의 막대기만 서 있는 11월이 쓸쓸하지 않을 테니까요...
오늘은 신석정 시인의 <가을이 지금은 머 길을 떠나려 하나니>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을이 지금은 먼 길을 떠나려 하나니 - 신석정
운모(雲母)처럼 투명한 바람에 이끌려
가을이 그 어느 먼 성좌(星座)를 넘어오드니
푸른 하늘의 대낮을 흰달이 소리없이 오고 가며
밤이면 물결에 스쳐나려가는 바둑돌처럼
흰구름 엷은 사이사이로 푸른 별이 흘러갑데다
남국의 노란 은행잎새들이
푸른 하늘을 순례하다 먼 길을 떠나기 비롯하면
산새의 노래 짙은 숲엔 밤알이 쌓인 잎새들을 조심히 밟고
묵은 산장 붉은 감이 조용히 석양하늘을 바라볼 때
가마귀 맑은 소리 산을 넘어 들려옵데다
어머니
오늘은 고양이 졸음 조는
저 후원의 따뜻한 볕 아래서
흰토끼의 눈동자같이 붉은 석류알을 쪼개어 먹으며
그리고 내일은 들장미 붉은 저 숲길을 거닐며
가을이 남기는 이 현란한 풍경들을 이야기하지 않으렵니까
가을이 지금은 먼 길을 떠나려 하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