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7 안상학 <국화>
강연자의 기본 태도는 청중의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모든 만남에서 대화의 자세가 그래야 합니다. 서로에게 즐거움과 유익성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물론 강연자의 모든 시간이 그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지요. 한 권의 시집을 사서 단, 한 두 편의 좋은 시를 발견해도 시집의 가치는 충분하고도 남는 것처럼, 강연자의 말을 들을 때 주제를 벗어나지 않고, 자신의 지식 전달에 오류가 없이 분명한 말의 전개가 단 10분만 있어도 가치롭지요, 적어도 등산을 할 때, 이 길, 저 길을 한꺼번에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어제는 두 시인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그분들의 말을 들으면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듣는 사람마다 평가기준이 다르니, 저의 생각이 옳다라고 말할 순 없어도, 최소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남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준비를 필요로 하는 거구나. 적어도, 말하고 싶은 주제와 갈래 정리만큼은 하고 서야겠구나.’ 라고요. 그럼에도 또 한 분의 시인이 전하는 시를 쓰는 자세, ‘생활을 벗어나지 않는 시’라는 말에는 공감했습니다. 어디 시 쓰는 일만 그럴까요. 글과 말은 결국 자신의 생활을 벗어나지 않은 것이라야 진실이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경기도의 어느 분(도시재생사업전문가)께서 말랭이마을을 소개해 달라고 해서, 미팅이 있습니다. 하루 먼저 오셨다고, 어제 마을을 둘러보고 계시더군요. 막걸리를 만들어서 바가지로 둥굴리게 계시던 어머님들께 협조를 요청했는데, 마침 잘 왔다고, 막걸리 한 병을 주셨어요. 제가 술을 못하지만 얼른 받아서, 동네 청소를 하시는 미화원 아저씨게 드렸더니, 좋아하셨습니다. 돌고 도는 나눔이 마을을 훈훈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마을 어머님들의 작품이 실린 책 출간을 궁금해하시는 어머님들. 거의 출간 마무리에 와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기대심이 대단합니다. 공동저자로 책 표지에 그분들의 이름을 실어드렸습니다. 책이 출간되면 말랭이 마을에도 비치할 예정이니, 혹시라도 오시면 읽어보시고, 그분들께 사인부탁도 하시면 엄청 기뻐하실 거예요. 안상학 시인의 <국화>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국화 - 안상학
올해는 국화 순 자르지 않기로 한다
제 목숨껏 살다가 죽음 앞에 이르러
몇 송이 꽃 달고 서리도 이슬인 양 머금다 가게
지난 가을처럼
꽃 욕심 앞세우지 않기로 한다
가지 잘린 상처만큼 꽃송이 더 달고
이슬도 무거워 땅에 머리 조아리던
제 상처 제 죽음 스스로 조문하던
그 모습 다시 보기는 아무래도 쓸쓸할 것만 같아
올해는 나도 마음의 가지 치지 않기로 한다
상처만큼 더 웃으려 드는 몰골 스스로도 쓸쓸하여
다만 한 가지 끝에 달빛 닮은 꽃 몇 달고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나는 슬픔을 위문하며
서리라도 마중하러 새벽길 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