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6 이상국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마치 오늘은 새날이 온 것 같아요. 지난 5일간, 아주 멀고 먼 길을 돌아온 듯해요. 하긴, 진짜 그럴지도 몰라요. 가족 모두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가상의 시간에 몸을 맡기고, 다녀왔을 거예요. 착하게 살아온 가족의 힘이 엄청나게 돋보였지요. 시댁 자랑 하나 할까요. 시댁 사람들은 사촌, 육촌 할 것 없이 유독 손끝이 따뜻한 사람들이에요. 결혼한다고, 처음 방문했을 때, 그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친 동기간인 7형제의 손길은 더없이 따뜻하고요, 친가, 외가, 사촌들도 누구나 손을 먼저 내밀고, 먼저 포옹하지요.
포옹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집안이 그리 흔치 않을 거예요. 끊임없이 누군가의 등을 토닥거리고요, 손을 만져주고요. 슬픔에 너무 빠질까 간간히 웃음도 주고요.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는 말처럼, 때때로 잔 바람이 들기도 하지만, 저의 시댁 사람들처럼, 배려와 양보가 몸에 베인 사람들도 없으리라... 참 복된 가족입니다.
이제 부모가 없는 조카 둘은 며칠 사이 진짜 어른이 되었고요. 제 아들 딸을 포함하여 함께했던 모든 조카들 역시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보였답니다. ’ 아픈 만큼 성숙한다 ‘는 말이 떠올랐지요. 나이 많은 저 역시도, 과거로, 미래로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평생 잊지 못할 시간여행을 한 셈입니다. 하지만 오늘부터 현실을 직시하고,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요... 그리운 사람은 떠났어도...
오늘은 책방에 선반을 몇 개 만들려고 해요. 새로운 곳에 가을단장을 하는 거지요. 저의 꿈 중의 하나가 사계절 책방을 만들어 보는 건데요... 어찌 그 꿈이 이루어질까요.^^ 이제 씨앗이 발아되어 푸른 싹으로 올라온 <봄날의 산책>이, 단단한 줄기대롱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언젠가 큰 그늘을 간직하여 누구나 쉬어가는 쉼터가 되도록, 부지런히 노력할게요. 오늘의 시는 이상국시인의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이상국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