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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04

2025.11.8 복효근 <수레국화>

by 박모니카

결혼 전 근무했던 학교 동료가 시톡과 함께 선물을 보냈더군요.


“언니, '가을'을 택배로 부쳤습니다. 책방을 사계절로 채우고 싶다 하셔서 소소한 거 보냈어요. '가을'이 온전히 내 것이 될 때까지는 '기다림'이 부록이에요.”


글을 쓰는 후배인 줄 알지만, 얼마나 시적으로 가을을 노래해 주던지요... 경기북부니 제법 멀리 살지만, 아침편지 받는 마음을 이렇게 화답해 주어서 감격스러울 뿐이지요.

어제 뵈었던 모 방문객과의 대화에서도 ‘노년에 놀고 싶은 책방’에 대해 얘기를 했지요. 세상에 많고 많은 직업 중에, 책방지기는 참으로 매력적인 자리인 것 같아요. 물론 현실적인 영리를 바란다면 비추천 업 일 수 있지만요.^^ 이 나이쯤 되니, 게다가 며칠 전 동생과의 이별을 맞으니, 앞으로 살아야 할,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이 확고히 자리를 잡아갑니다.


그중 하나가, 있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도 하며, 만나고 싶은 사람과 만나는 삶이죠. 남은 인생도 길지 않은데, 어딘가에 억지로 있어야 하고 끙끙거리며 일해야 하고, 유쾌하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을 이어가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죠. 할 수 있다면 노력해서 된다면, 쉽게, 즐겁게 행복한 시간을 나누며 살아야 하지요.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생각의 전환”입니다.

‘안될걸?’을 ‘될 거야!’로, ‘슬픔 중’보다 ‘공부 중’으로, ‘싫어’보다 ‘그것도 괜찮아’로, ‘헉’ 보다 ‘아고야’로, ‘기가 막혀’를 ‘불쌍하네’로... 등 등 등. 이렇게 쓰고 나니, 저야 말로, 하루 만에 있었던 지난 모든 일이 다 별 일 아닌 일이 돼버리네요. 하하하^^


후배님 말대로 ‘기다림’을 부록으로 되새기고 천천히 살아야겠어요. 그래서 어젯밤에도 귀가 후 시간여 이삿짐 준비를 혼자서 사그락 사그락 했지요. 딸 아들의 중고시절 교복도 만져보고, 새 옷 안 사주는 엄마에게 투정 부리지 않고 사춘기를 보내주는 것이 기특해서 어느 해 처음으로 새 파카를 사주었던, 그래서 10년이 넘도록 입었던 그 옷의 먼지도 떨어보고요.


덜 떨어진 옷, 많이 닳은 옷, 작아져버린 옷, 결혼 후 살찌기 전까지 입었던 옷 등, 일일이 분류해서 몇 봉투 만들고요. 이사 후 당장 입고 써야 할 물건은 책방에 잠시 보관하기, 남편의 옷 정리하기, 요즘 아침편지 쓰는데 도와주는 책들도 별도 보관, 머릿속에 회전하며 돌아가는 ‘must do’ 리스트를 보는데도 그냥 즐겁기만 합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 오늘은 복효근 시인의 <수레국화>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수레국화 - 복효근


새로 건설 중인 도로 옆구리

맨땅에 수레국화가 가득 피었다

땅이 다져져 굳는 동안

빗물에 토사가 씻겨가지 않게

흙을 붙들고 있으라는 작업지시를 받은 모양이다

한국도로공사는 수레국화에게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가냘픈 등허리에 수레라는 이름을 얹고

위태로이 피어 있다

수레에 가득 흙먼지를 싣고 안간힘으로 웃는다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비로 목을 적시고

최저임금이야 들어본 적도 없이

장좌불와 푸른 바퀴를 굴리고 있다

수레국화는 도로공사가 무슨 절 이름인 줄 아는지

푸른 머리띠 질끈 매고

묵언수행 중이다

11.8 기다림 부록1.jpg
11.8 기다림 부록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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