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83

2026.1.26 오세영 <열매>

by 박모니카

<장자(莊子)> ’ 소요유‘ 의 첫 부분에 나오는 우화인데요. 먼 북쪽의 깊고 어두운 바다에 살고 있는 곤(鯤)이라는 커다란 물고기가 새로 변하여 하늘로 솟구쳐 오르면 대붕(大鵬)이라는 새가 되었다고 해요. 곤 이라는 물고기도 몇천 리에 달할 만큼 크고, 대붕이 되어 날아오르는 높이도 구만리에 이르렀다네요.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나는 대붕의 눈에 비친 이 세상은 얼마나 자유로웠을까요.

저는 지식이 짧아서 대붕에 대한 철학적 해석은 불가능하고요. 하지만 금강하구변에 모여있던 가창오리의 군무를 보면서 대붕이 생각난 것은 아마도 그 누구나 연상할 수 있는 장면이지요. 작은 새가 모여 붕새가 되는 아름다운 군무를 보니 작은 인간 하나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기제로 발현된 집단 지성의 위력이 떠올랐답니다. 어쩌면 자연을 보고 자연스럽게 인간이 따라 하는 것도 섭리인 듯싶어요.

올해도 군무를 직접 보고 사진 찍어야지 하는 맘을 갖고 있다가 드디어 어제저녁 금강하구변에서 그 모습을 담았습니다. 일요일 오후 내내 책방 자리를 잘 지켰더니, 행운이 온 것이 아닌가 하죠. 몇 번을 나가도 가창오리들의 춤추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어제는 부부 손님들이 많았는데요. 분명 연배로는 저보다 어려 보였지만 말씀하시는 언어구사력의 수준이 높고 책을 좋아하는 마음들이 가득 했어요..오시는 분마다 진솔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무려 20권이나 팔리는 대 횡재를 했지요. 다섯 시가 되니 밥 먹으러 떠날 가창오리가 생각났어요.


매서운 날씨더군요. 핸드폰 조금 들고 있는데 손가락이 에일 정도로 강바람은 차가웠어요. 그래도 가창오리 나는 모습을 보겠다고 서 있는 사람들 속에서 저는 운 좋게도 도착한 지 5분 만에 그 멋진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아쉬운 것은 해마다 오리의 수가 줄어든다는 점인데요. 이번에도 제 머리 위로 나는 오리들의 수가 한눈에 거의 들어왔어요. 함께 간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약 3만여 마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데요. 하여튼 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연출해 준 멋진 활공은 저게 주는 선물 같아서 정말 좋았습니다.

날씨가 포근해서 그래도 이들이 머무는 기간이 약간 길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 겨울철새의 장관을 매일 볼 수 없으니, 사진으로나마 나눠드립니다. 주말 또는 평일에도 시간 되시면 금강 하구변 아래 또는 나포 십자뜰 부근으로, 오후 5시경 가시면 볼 수 있을 거예요. 오늘은 1월의 마지막 주간이군요. 그래도 새해라고 매일 확인하면서 지내서 그런지 하루하루가 꼼꼼히 생각나는군요. 금주도 특히 첫날인 오늘도 알차게 나 고유의 시간을 만들어보아요. 오늘은 오세영 시인의 <열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열매 - 오세영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

둥글어야 하는가.

가시나무도 향기로운 그의 탱자만은 둥글다.

땅으로 땅으로 파고드는 뿌리는

날카롭지만,

하늘로 하늘로 뻗어가는 가지는

뾰족하지만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

덥썩

한입에 물어 깨무는

탐스런 한 알의 능금

먹는 자의 이빨은 예리하지만

먹히는 능금은 부드럽다.

그대는 아는가.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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