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품에 안긴 텃밭

2020.7.8 텃밭이야기 11화

by 박모니카


어느덧 일년의 절반이 지나갔다. 말 그대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 눈 감짝 할 새를 타고서.

지난 6월부터 서서히 열매들이 고개를 내밀어 텃밭 가족들의 이집 저집 모두 소소한 수확의 재미를 즐겼다.

나만해도 오이류 30여개 따고 가지 20여개, 대추토마토 20여알, 각종 쌈 채소류를 배부르게, 호박 3-4개를 따다 먹었다.


며칠 전에는 통통한 오이고추를 따다 엄마에게 새콤달콤하게 장아찌를 담아달라고 했다. 작년에도 담았었는데 그 앗싸라한 맛과 사각거리는 소리가 일품이었다. 엄마는 매번 담아주실거면서도 매번 잔소리하신다. "담아주면 버리지 말고 먹어야지."라고. 나이 드는 것이 이런 것인지, 요즘은 장아찌 종류는 무엇이든 반찬거리로 일등이다.


어제 아침에도 텃밭이 궁금해서 발길을 돌렸다. 얼마전 양파와 감자 기부가 이루어진 뒤로 텃밭을 유심히 보지 못했다. 텃밭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자라는 들깻잎은 항상 나의 첫 손길의 희생양이다. 누구 것인지는 몰라도 들깻잎 쌈을 좋아하는 나는 이 밭 저 밭 다니며 깻잎을 따고 냄새를 맡으며 그 깊은 향을 몸에 축척한다. 마치 정신을 맑게하는 좋은 카페인이 들어있는 양, 깻잎의 향을 깊이 들어마시기를 서너번 한다. 그렇게 비닐 랩에 한 봉다리 담아와서 점심으로 채소쌈을 먹었다.


작년에는 호박으로 풍년의 기쁨을 맛보아서 올해도 제법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남편이 정성스럽게 호박 줄기를 잘 뻣어나가서 열매를 맺도록 지지대에 줄 사다리도 매어 주었는데, 너무 세세해서 그랬는지 생각만큼 호박이 열리지 않는다. 열린 것도 아직은 크기가 작다. 작년처럼 아무렇게나 땅에서 지 맘대로 뻗어나가라고 놔둘걸 하는 후회도 생겼다. 남편은 기다려 보라고 한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대추 토마토의 곁 가지들이 풍성해져서 가지도 치이고, 조금 있는 강낭콩도 치였다. 가지를 조금조금 들어 올려, 지지대에 매어주니 아래 밑중에 줄줄이 빨간 토마토가 자기를 봐달라고 난리였다. 그 자리에서 따서 남편도 안주고 다 먹어버리니, '나도 참, 무슨 욕심인가.' 싶어 웃음이 나왔다.


청양고추대를 다시 살피고, 벌레 먹은 것들은 떼어내서 전염을 막고, 두렁사이 자란 잡초를 뽑아낸다고 벌써 두시간이 지났다. 허리를 펴니, 하늘이 빙빙. 물 한모금 마시고 다른 가족들의 텃밭 구경을 나섰다. 가장 정갈하고 왠지 진짜 중의 진짜 유기농 작물만 키울 것 같은 에스더네 텃밭으로 갔다.


단 호박 두 덩이가 마주보고 줄기를 올리고 있었다. 가지가지 호박 종류도 많지만 단호박은 모양새부터 개성이 드러난다. 그러니 그 맛도 찰지고 맛있을터, 나도 내년엔 단호박 몇개 심어야겠다고 질투를 했다. 지푸라기 사이로 뽀족히 나온 생강잎, 울금 잎은 다른 가족들이 생각도 안하는 작물이라서 에스더 가족만의 매력적인 취향이 엿보였다.


선거관리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시오네. 올해는 선거가 있어서 유난히 바쁜 와중에도 한 두렁에 다양하게 작물을 심었다. 욕심많게 많이 심은 나와 달리, 소리없이 욕심없이 잘 키우고 있었다. 가경이네 밭에 앙징맞게 올라온 둥근 새싹이 무엇인가? 알타리 인가?


나는 모두 감자를 걷어낸 두렁을 잠시 묻혔다가 대준씨네가 배추와 무우를 심을때 하는대로 따라 할 예정이다. 작년 에스더네가 담은 김장으로 배추김치가 어찌나 맛있었던지 올해는 꼭 내손으로 배추를 심어 내 고추와 함께 김장을 담을 참이다.


금주내에 내 옥수수가 나올 것이다. 혹시 몰라, 수염이 질게 자라 아래로 흐들흐들 구부러진 성단 3개를 잘라서 가져왔다. 마침 아들이 방학해서 내려온다기에 맛있게 쪄서 먹일 요량이었다.

학원의 수업 중에 전기밥솥에 살짝 앉혀놓는다고 한 것이 무려 3시간 후에 발견하니, 꼴이 아니었다. '무슨 맛있는 냄새가 나요' 라고 말하는 선생들한테 창피해서 쪼글아진 옥수수를 모두 내 쪽방에 놓고 또 나만 먹었다.


도데체 이게 무슨 맛인지, 가늠이 안되니, 옥수수에게 미안하기 그지 없었다.

'얼마나 나를 욕할 것인가, 옥수수하나 제대로 찌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농부라고'


이제 돌아가야겠다고 뒤돌아 나오는데 텃밭의 맨 가장 자리에서 가을 손님이 나를 불렀다. 대준씨네 텃밭 옆이다. 요즘은 사계절이 분명하지 않아서 특별히 코스모스를 가을의 전령이라고 말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코스모스는 언제나 우주의 대변인이자 가을손님이다.


코스모스를 보러 발길을 옮기는데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 바로 해바라기 였다. 그러고보니 텃밭 가족 몇 분이 해바라기 씨앗을 심었다고 말했었지. 세상에나, 이렇게 튼튼하고 예쁘게 자리 잡고 있었다니.


어느새 해바라기 가족들이 우리 텃밭 가족 모두를 품에 안고 있었음을 이제 발견한 것이다. 갑자기 모 드라마 '해품달'이 생각났다. 해를 품은 달인지, 해가 품은 달인지는 몰라도 우리도 '해품달'가족이 되어있었다.

'해바라기가 품은 농사의 달인들' 이라고 혼자서 작명하면서 사진 몇 컷을 찍었다. 그 중에는 아직도 잠이 덜 깼는지 두 눈을 꼭 감고 마치 일어날까 말까를 고민하는 아이의 눈 떨림처럼, 새침떼는 해바라기가 얼마나 예뻐보이던지.


아, 이제 7월이다. 어젯밤 딸과 함께 걷기를 하고 돌아오면서 말했다. 없는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달, 7월!

"만물이 풍성해지니, 마음도 넉넉해지는 7월. 누구라도 다가오면 나눠야 한다. 누구에게라도 다가가서 나눠야 한다" 라고 말하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늘도 내게 주어진 이 순간을 감사하며, 또한 함께 하는 텃밭과 그 가족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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