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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편지140

2022.9.4 강민경<태풍의 눈>

by 박모니카

그런 느낌 아실까요? 순간의 정적이 몸 안에 들어와서 각개전투하는 오감의 소란을 온통 다 감싸버리는, 마치 블랙홀처럼요. 태풍 ’힌남노‘에 앞서서 온 먹구름 속에 간간이 비추던 어젯밤 초승달. 신 새벽 말랭이 산 위로 고요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니, 어느새 어제의 힘들었던 시간이 사라졌네요. 10여 명의 장정들의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추억보따리를 옮기느라 수고했지요. ’아고야‘소리가 절로 나더군요. 한도 끝도 없이 펼져진 노란색 짐 상자가가 마치 홍역덩어리가 같이 보였다니까요. 그래도 그 와중에 생각했죠. ’시간이란 명약이 있느니 이 수고로움 다 흘러가리라.‘ 풀지 못하고 천장 높이 쌓여진 바구니들이 새 집의 첫 잠자리를 차지해서 전 책방에서 일숙했지요. 이 아침의 어둠과 고요는 정말 태풍의 눈을 보게 합니다. 세상사 그 어떤 일도 경건한 맘으로 바라보라는 계시 같아요. 역대급 태풍이라 하니, 모든 분들의 일상, 특히 어려운 환경에 처한 분들의 안녕을 기도합니다. 오늘의 시는 강민경시인의 <태풍의 눈>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태풍의 눈 - 강민경


하나뿐인 눈으로는 사선을 그리는

대각의 세상을 다 보지 못한 한풀이였는가!

뱅글뱅글 지축을 흔드는 태풍

만물에게, 아니 우리들에게 수난이다

이 세상 누군들

살가운 바람으로 살고 싶지 않겠나 만

세상에서 환영받고, 사랑받고, 싶은데

지글지글 끓은 지열이 목마르다

바다에 파도는 뭍이 그리워 끝없이 출렁이고,

칭얼대는 말들이 버겁다고

하소연할 곳이 없는 급하고 사나운 본성,

숨기지 못하는 외눈박이 태풍이니

뱅글뱅글 천방지축의 살벌함으로 돌고,

할퀴고, 때려 부수는 행패만 앞세우니

평화의 어제는 간 곳을 물어 낯설다

거덜 난 세간 살이 걱정에 잠 못 이룸이

나만 당하는 일이 아닌데

고향 땅을 휩쓴 태풍 ’차바‘도

미국 노스케롤라이를 강타한 ’매슈‘도

원근과 좌, 우 구분 못하는

외눈박이 짓거리하고 탓할 수 만 없으니

아수라장이 된 세상 근심스런 그 틈으로,

깊어가는 가을 하늘 청명한 햇볕

한 걸음으로 달려와, 노여움으로 씩씩대는

폭풍의 눈,

부드러운 손들어 쓰다듬는다

근심 걱정은 잊고 잘 여문 가을 알곡 생각만 하자며

세상 다독이는 귀한 햇볕 따시시 따시다.


9.4태풍의 눈.jpg 말랭이 마을에 찾아온초승달의 아미가 마치 외눈박이 태풍의 눈처럼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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