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22 신경림<갈대>
그런 날이 있지요. ‘우연’이 ‘필연’처럼 느껴지는 일들이 계속되는 날. 아침에 읽은 한시 한 줄에 ‘서리 친 갈대 섬엔 해거름에 기러기 내려오네’가 있더니 하루종일 갈대만 보게 되는 우연. 은파의 저녁노을 사진 속, 나나무스크리의 <over and over>영상 속, 박목월시인의 시 <나그네>속. 어느 드라마 주제곡 <10월의 어느 멋진날>을 울리는 바이올린 속, 오랜만에 만난 후배들과의 점심 수다 속. 갈대는 계속 너울거렸습니다.
‘오늘이 넘어가기 전에 꼭 갈대를 만나러 가야지’. 잠깐의 ‘틈’을 내어 은파 연못의 해거름을 찾았지요. 어제와 같은 붉은 노을 속 갈대를 상상했지만, 또 다른 갈대와 억새, 버들이 기다렸어요. 사진에 담아 지인에게 보내니 ‘수줍은 새색시 마음 닮았어요’라고 하셨어요. 갈대를 품어준 노을, 노을을 빛내준 은파물결, 물결 위 반짝이는 윤슬, 윤슬의 미소를 닮은 사람들의 모습이 이어지더군요. 소소한 사물 하나가 연달아 가을을 만끽할 수 있게 해주었답니다. 오늘의 시는 신경림 시인의 <갈대>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