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26 안도현<9월이 오면>
9월이 오기 전엔 가을 향기를 전하는 가을 시 몇편 기억하리라 했건만 9월이 다 가도록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든 시 하나가 없네요. 아침편지를 쓰니 분명 매일 시를 읽는데도 시인의 맘 위에 제 맘도 올려 체화되는 일, 분명 쉽진 않은 일. 아침 밥상 그릇만 요란하게 올려놓았지 본질의 맛을 놓쳐 버린 건 아닌가, 시인에게 누가 되는 일은 아닌가, 눈을 감고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말 속에 살다보니 저를 잃어버릴 때도 많구요. 제 맘의 주인을 찾을까하여 책방의 시집을 둘러보았죠. 오랜만에 안도현시인의 시집을 넘겨보다가 9월이란 단어에 멈추었습니다. 오후 늦게 보았던 금강물결을 물들이던 저녁 노을, 나포십자뜰의 햇볕담은 벼이삭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내 속에 있는 강 물결, 들판의 벼이삭들이 시 알맹이였구나. 최소 이 맘으로 시를 전하면 덜 부끄럽겠지.’ 오늘의 시는 안도현시인의 <9월이 오면>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9월이 오면 - 안도현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9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9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