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192

2022.10.26 문병란<인연서설>

by 박모니카

고흥, 대전, 의정부, 전주, 서울, 경기도, 말랭이마을. 어제 하루 책방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터입니다. 제 몸이 움직인다면 어찌 이곳을 하루에 다 둘러볼 수 있을까요. 제가 바람이라면 모를까. 말랭이 책방에 온 뒤로 인연으로의 구애는 더욱 진해집니다. 요즘 같은 가을날에는 낙엽이 되어 다음에 싹 틔울 인연나무의 퇴비가 되고 싶은 마음이 일렁거리죠. 배경을 모르는 사람들과의 대화, 비록 한 번의 만남일 수 있어도 가치로운 소통의 장이 되고 싶은데요, 어제 만난 인연들은 제게 더 큰 삶의 지혜를 알려주고 가셨지요. 부지런히 그분들의 말과 미소,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을 얼른 받아서 숨겨 놓았답니다. 잊지 않고 또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오늘도 색색이 다른 사람 꽃들이 책방에 가득 피어나길 소망합니다.

오늘의 시는 문병란 시인의 <인연서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인연서설 - 문병란


꽃이 꽃을 향하여 피어 나듯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


물을 찾는 뿌리를 안으로 감춘 채

원망과 그리움을 불길로 건네며


너는 나의 애닯은 꽃이 되고

나는 너의 서러운 꽃이 된다


사랑은

저만치 피어 있는 한 송이 풀꽃


이 애틋한 몸짓

서로의 빛깔과 냄새를 나누어 가지며

사랑은 가진 것 하나씩 잃어가는 일이다


각기 다른 인연의 한 끝에 서서

눈물에 젖은 정한 눈빛 하늘거리며


바람결에도 곱게 무늬지는 가슴

사랑은 서로의 눈물 속에 젖어 가는 일이다


오가는 인생길에 애틋이 피어났던

나와 나의 애닯은 연분도

가시덤불 찔레꽃으로 어우러지고


다하지 못한 그리움 사랑은 하나가 되려나

마침내 부서진 가슴 핏빛 노을로 타오르나니


이 밤도 파도는 밀려와

잠 못 드는 바닷가에 모래알로 부서지고


사랑은 서로의 가슴에 가서

고이 죽어 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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