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223

2022.11.27 이해인<인연의 잎사귀>

by 박모니카

송년이 가까이 왔지요. 지인들끼리 밥 한번 먹자는 인사가 늘어나네요. 군산에 온 지 20여년, 어린자녀들의 친구를 만들어주자고 만들었던 영어동화모임도 20년. 그사이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요, 엄마인 저희들은 서로를 의지하는 가족. 만나지 않아도 좋고 만나면 더 좋은 가족보다 더 귀한 인연이 되었네요. 나이로는 후배인 그들, 지역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로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전 여전히 20년 전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답니다. ’엄마표영어교육‘를 지향했던 홈스쿨엄마선생님들. 영어과외비 없이 우리 손으로 영어공부 시켜보자며 영어동화책으로 자녀들의 영어를 재밌게 시작했었던 그들. 우리들의 첫 만남이 영어라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어도 이제는 초로의 문을 함께 열어가는 동지들이 되었습니다. 10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 모임의 막내를 대하는 저 역시도 오히려 세대차이를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그녀의 말을 듣는 연습을 하니까요. 서로의 말을 들어줘야 맘의 문이 활짝 열림을 다시 보았습니다. 오늘의 시는 이해인시인의 <인연의 잎사귀>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인연의 잎사귀 – 이해인


수첩을 새로 샀다.

원래 수첩에 적혀있던 것들을

새 수첩에 옮겨 적으며 난 조금씩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어느 이름은 지우고

어느 이름은 남겨둘 것인가

그러다가 또 그대 생각을 했다


살아가면서 많은 것이

묻혀지고 잊혀진다 하더라도

그대 이름만은

내 가슴에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언젠가 내가 바람 편에라도

그대를 만나보고 싶은 까닭이다


살아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할 일이 많이 있겠지만

그대와의 사랑, 그 추억만은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까닭이다


두고두고 떠올리며

소식 알고픈 단 하나의 사람

내 삶에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 남겨준 사람


슬픔에서 벗어나야

슬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듯

그대에게 벗어나

나 이제 그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네


처음부터 많이도 달랐지만

많이도 같았던 차마 잊지 못할

내 소중한 인연이여

10년의 나이차, 이제는 서로를 안아주는 인연이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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