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249

2022.12.24 강형철 <수면제>

by 박모니카

큰 눈이 오면 따라올 불편한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흰 눈이 미소되고 흰 눈이 기쁨되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죠. 오늘도 호남지역 대설이라면서도 뉴스앵커의 말끝은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하얀 눈을 볼 수 있어요’라고 하네요. 전 어제 햇병아리 출판사 대표로서 책임지고 약속한 일을 마무리했지요. 쏟아지는 눈 속에서 군산은파호수의 아름다운 설경을 사진에 담으며 출판사의 올해 마지막 시집출간물을 기다렸어요.

愼終如始(신종여시) -끝을 신중하게 하는 것을 마치 처음같이 한다- 일을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제 마음을 수평선에 올려놓는 연습을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 일수록 감정의 파고를 숨기고, 멀리서 보면 평온하고 변함없이 보이는 수평선을 닮으려고 하지요. 물론 매번 실패하지만요^^ 우여곡절 끝에 나오는 결과물은 더욱더 애정이 가는 법, 어제 나온 강형철 시인의 시선집 <가장 가벼운 웃음>이 그랬습니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모시듯 조심조심 시인의 집에 도착, 책을 전해드리며 ‘크리스마스 선물이예요’ 라고 하니 흰 눈꽃으로 피어난 정원의 나무보다 더 활짝 핀 함박웃음을 보이셨지요. 저도 처음으로 안도한 마음에 그분의 손을 꼭 잡아드렸습니다. 저에게도 수고했다고 애썼다고 토닥여 주셨습니다. 비록 눈 속에 몇 번씩 차가 박혀서 눈을 치우느라 애태우며 온몸에 눈이 쌓였어도 정말 행복했어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추억이 될 하루였습니다. 오늘의 시는 강형철시인의 <수면제>, 참 좋아하는 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수면제 - 강형철


어떤 이는 나에게 효자라 말하고

어떻게 삼 년 동안 혼자 어머니를 모시냐고 궁금해하지만

나는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웃는다


여동생도 삼 년이나 모셨고

나는 이제 조금 모시고 살뿐이며

실은 내가 모시는 게 아니고

어머니에게 개인지도 받는다는 것

순간순간 온몸으로 깨우쳐주시는 가르침 받고 있는 것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 우렁각시보다 더 요긴한

기막힌 처방전 하나 지니고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육 년쯤 되는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기발한 행동은 줄였지만

이따금 한마디씩 깨우쳐주시는 재미가 있고

어머니의 놀라운 상상력에 내 션찮은 상상력은 늘 어리둥절한다


부축하며 걸어도 주간보호센터 선생님들이 있고

학교에서 돌아오실 시간엔

하이코 우리 어머니 오셨네 큰소리로 모시면 된다

저녁밥을 천천히 대화하며 나누어 먹고

일회용 팬티 바꾸어드린 뒤

치카치카 양치를 하면 하루가 끝나는 것

한발 한발 서서히 침대에 안내하고

아직 정신이 있는 어머니께 비장의 수면제를 드린다


오늘 하루도 잘 보냈네요 어머니 학교 갔다 오시고 밥도 먹고 야쿠르트로 입가심도 했고 약도 먹었네요 양치도 하고 팬티도 갈아입었으니 오늘은 다 끝났네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이제 편안히 주무세요 저는 제방으로 가서 이제공부 좀 하려고요 어머니 정말 사랑해요


평생 장남 일에 안 된다는 말 한 번 안 하신 어머니

내가 교회고 절이라고 하셨던 어머니

공부해야 한다는 말엔 그 어떤 것도 방해가 돼선 안 된다고 믿는 어머니


‘공부해야 돼요’하는 말은

그래서 가끔 힘들면 사용하는

우리 어머니 최고의 수면제

군산은파호수


은파호수산책길
은파호수 물닭


봄에는 벗꽃나무 겨울엔 눈꽃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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