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대설로 말랭이마을은 하얀 면사포를 쓴 천사들이 사는 천국 같았어요. 순백색의 빛을 담은 고깔모자를 쓰고 내려온 흰 나비천사들이 집집마다 내려앉았죠. 먼 나라로 설경을 보러가는 지인도 있었지만 저는 군산에서 아름다운 설경은 다 맛본 듯합니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언제나 엄청난 괴리가 있지요. 짜디짠 쓰디쓴 염화칼슘가루를 뿌려대니 한순간에 흰 눈과의 이별의 아픔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이 커다란 청소도구 하나 들고 책방골목에 올랐죠. 아직도 반짝이는 흰 눈 영혼들과는 사진 한 장으로 안녕을 고했습니다. 책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쌓인 눈을 치우고 나니 이내 제 몸 구석구석이 쑤시며 아프더군요. 한여름의 더위처럼 온몸이 땀으로 적셨지만 책방 앞길은 트였어요. 크리스마스 이브, 누가 이곳까지 올라올까요. 그래도 책방을 열고 혼자서 캐롤송과 리스화환, 포인세티아 꽃, 그리고 성탄 시 몇 편과 놀았습니다. 저녁에는 성탄전야 미사에서 올해 제게 축복의 손길을 주신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했구요. 성탄은 빛으로 낮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온 예수님을 축하하는 날이죠. 예수의 말씀이 들리시나요. ‘사랑하라. 네 이웃을!’ 폭설로 상심한 우리 이웃을 사랑하는 법. 바로 그들과 함께 집 앞 눈도 치우며 함께 땀을 흘려보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