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h My Life

몽글몽글이 뭐예요?

2020.9.10 브런치 매일쓰기 13

by 박모니카

깜박 잠이 깊이 들었나, 벌써 7시가 넘었다. 오전에 꼭 끝내야 할 텃밭일이 있었다.

“아들, 일어나, 금방 날이 차올라. 더워지면 아무것도 못해. 배추 심으러 가자.”


깊은 한숨과 함께 엉거주춤 일어나는 것 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팔토시, 챙모자, 수건을 챙겨주며, ‘아드님 부탁합니다’라고 아부를 했다. 말은 안했지만 늦잠자고 일어나려니, 몸이 괴로웠을 것이다.


텃밭에는 이미 한 지인이 나와 있었다. 지난번 제초기로 내밭 네밭 할거없이 잡풀들을 모두 베어주신 분이었다.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고, 그간 수확인 품종에 대해서도 주고 얘기를 주고 받았다. 그 분의 손놀림은 어찌나 정갈한지, 벌써 두둑위에 배추와 무를 다 심고, 비닐멀칭까지 완성된 상태였다. 남들이 안하는 율무에 생강까지 농사지으며 텃밭을 일구는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감자와 옥수수를 심었던 상단 밭. 잡풀들이 퇴비처럼 둔덕을 이루고 있어서 남편과 아들을 불렀다.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할지를 당신이 알려줘. 일을 분담해야 빨리 끝내고 밥먹죠. 너도 아빠 말 잘 들어두고.”

“우리 힘센 아들은 아빠하는거 보면서 저 갈퀴로 풀들을 긁어 내려와라, 당신은 고구마 줄기만 잘 정리해주고, 가을 배추는 굳이 비닐을 안해도 되니 걱정 말고요.”


결혼 후 3년차에 남편은 명예퇴직하여, 여러 가지 가정사로 재 취업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때는 아이들이 세 살과 한 살 이었으니 망정이지, 지금처럼 대학생이 된 후 남편이 실직을 했더라면 내 마음이 훨씬 더 힘들었으니라. 물론 때때로 남편의 실직으로 ‘내가 어쩌다 이렇게’라는 하소연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나의 타고난 긍정적 성격은, ‘어디 남자만 가장이랴’라는 기운을 가져다 주었다. 그 후 내 집의 경제를 담당해왔다. 공부 많이 시켜준 부모님께 감사하면서.


남편은 참으로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 중 하나를 손꼽으라면,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늘 바래 왔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남편의 말씨의 매너와 배려하는 마음을 닮았으면 하는 것이다. 무조건 분명해야하고 약속과 목표 지향적인 나를 닮으면 왠지, 삭막해질 것 같은 마음이 늘 있었다.

오늘도 남편은 아들에게 보여주었다. 땅을 고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면서.

“엄마가 모종을 잘 심으려면 땅이 몽글몽글 해야 한다. 네가 갈퀴를 가지고 흙을 살살 긁으면서 아래로 내려가거라. 나머지 두둑 옆 정리는 내가 하마.”

“땅이 몽글 몽글 이란 말이 뭐예요. 어떻게 해.”

“고르게 펴라는 얘기지. 모종이 심겨질 땅의 성질이 가장 중요하지. 그 성질은 모종을 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매사 정성을 다해서 사물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듯이 존중해서 바라보면 세상이 달라보이지.” 남편은 설명했다. 아들은 끄덕거렸다.

배추 두덕 위에 모종을 심는 것은 내가 담당했다. 아들이 파 주는 구멍에 여린 모종을 조심조심 넣고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꾹꾹 눌러주었다. 남편이 말한 것처럼 존경하는 맘으로 모종을 바라보면서.

준비한 모종 110개는 2개의 두둑위에 심고, 땅이 모자라, 호박 밭 옆을 개간하여 20여개를 심었다. 욕심이 많다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차피 사온 모종을 버릴 수는 더더욱 없었다.

이 어린 것이 햇빛도 받고, 바람도 만나고, 대기의 습기도 부딪히면서 한잎 두잎 살이 붙을 것을 생각하니 진짜 사람처럼 느껴졌다.


마침 엄마의 전화가 와서 배추 모종 심은 얘기를 했다. 올 김장에는 꼭 이 배추로 담아달라고 했다. 비가 많이 와서 무씨를 뿌릴 자리의 두덕은 말랑거려야 한다며 파종을 주말로 옮겼다.

이왕 심는 거 김장때 쓸 대파도 심고, 내년 겨울에 먹을 봄똥도 준비해야겠다고 했다.

처음으로 삽을 잡고, 무려 네 두덕이나 고른 아들은 나의 말이 욕심으로 들렸나보다.


“엄마, 천천히, 조금씩 해. 할머니가 담아주는 김장을 한 번도 다 먹은 적이 없잖아요. 맨 날 다름 사람이 다 먹으면서. 음식 낭비도 큰 죄야.”


“아들, 너 내가 또 텃밭일 하자고 할까봐 미리 선수 치는 거지. 너 주말에 올라가면 하자고 할 수도 없어. 농사일이란게, 다 때가 있는거더라. 아무 때나 심고 싶은 거 심는 게 아니야. 그리고, 오늘 힘들었겠지만, 아주 중요한 일을 한거야. 요즘은 초등 때 학생들이 이런 경험을 하도록 교과과정이 되었더라. 네가 미리 경험이 있어야 학생들을 가르치지.” 라고 잔소리를 했다.


집에 돌아와서 인강수업이 끝난 딸과 함께 동네의 음식점에 갔다. 텃밭가는 길에 있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의 풍경을 뷰로 가진 음식점이다. 갈비탕과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고, 시원하고 달달한 냉커피를 준비한 남편의 안내에 따라, 오랜만에 서로의 미소를 보았다.


‘아, 사람하는 내 사람들, 부디 건강하게 평화롭게 살아가주길. 사람도 사물도 몽글몽글 고르게 대하고 존중하는 삶이 되길’ 화살기도로 마음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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