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14 이대흠 <그리움의 공장은 휴무가 없습니다>
’저는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선생님의 아침편지를 읽는 것이 참 좋아요. 특히 학생들과 진로를 얘기할 때 아침에 읽었던 시를 들려줘요. 정호승 시인의 <봄길>을 들려주며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은 바로 너희들이야 라고 하면 학생들도 자긍심을 느끼죠.‘
’이렇게 선생님을 다시 만나 추천해주는 책(시집)을 읽는 것이 정말 행복해요. 게다가 우리 다문화 학생들에게 읽어줄 동시집을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이번 책들도 재밌게 읽고 또 열심히 가르치고 다음주에 새 책 받으러 올께요‘
어제 만난 지인들이 저를 향해 사랑의 증언을 해주었답니다. 책방하며 아침편지 쓰길 참 잘했다 하는 순간들이 바로 이런 때입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이 중 한 사람은 학원에서 공부했던 중학생이었죠.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요, 이제는 학교라는 사회에서 또 다른 제자를 교육하고 있네요. 어제도 얼마나 바쁜 와중에 찾아왔는지 두 팔에 자신의 분신인 어린 아이를 안고 사무실에 들어서더군요. 영어를 공부하겠다고 학원에 왔었던 그 옛날에도 언제나 밝은 미소가 먼저였어요. 타고난 천성이 따뜻하고 무슨 일이든 긍정적이더니 성인이 된 지금도 변함 없습니다.
제 아이들 어릴 때 읽어주었던 동화책 <Library>의 주인공은 하늘에서 떨어져 세상에 나올 때부터 안경을 쓴 소녀였어요. ’언젠가는 내 이름 단 도서관 하나 만들어야지’라는 소망은 변함없는 1번 도착지이지만, 종이책을 멀리하는 사회를 보면 ‘글세...’라는 꼬리표가 붙지요. 요즘에 부쩍 눈이 나빠져서 별의별 고민을 할 정도인데도 30cm 내의 시야에서 보여지는 글자가 없었더라면 무슨 재미로 사나 하며 책과 글이 주는 힘으로 오늘도 아침을 맞습니다. 오늘은 이대흠 시인의 <그리움의 공장은 휴무가 없습니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그리움의 공장은 휴무가 없습니다 - 이대흠(1967-현, 전남장흥)
그대를 사랑한다고 하기 전에 그대가 생각난 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흙 속에서 봄싹이 오르듯 그대는 불쑥 자라납니다 없었는데 없다고 믿었는데 티눈처럼 풋내도 없이 그대는 나타납니다 하루에 일곱번은 나타납니다
그대를 몇번이나 떠올리는지 헤아리다가 멈추었습니다 세다보니 계속해서 그대만 떠올랐습니다 마치 밤의 어둠처럼 물러설 기미가 없이 그대가 있었습니다 그대를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그대가 있어서 나는 마음속 그대를 추방할 수가 없었습니다
까맣게 잊고 다른 일을 하다가
그대가 몇번이나 떠올랐는지 세어보면 일곱번이나 여덟 번 혹은
서른번쯤 마음에 도장 찍듯 그대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압니다
마음에도 프린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화면에 그대가 스칠 때마다 인쇄가 된다면
하루에 몇번이나 그대를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아마도
그대 얼굴 새겨진 종이가 키를 넘길 것입니다
그대를 생각하지 않는 순간이 몇번인지를 세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까맣게 잊기 위해 그대를 생각합니다
생각할 때마다 그대 얼굴은 더 선명해집니다
복사한 것도 아닌데
뽑아내도
뽑아내도 더욱 그대가 남은 것을 보니
내 안에 무수히 많은 그대가 압축되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누가 이토록 많은 그대를 생산하는 걸까요
그리움의 공장은 휴무가 없습니다
아껴서
아껴서
일곱번만 생각하려 하겠습니다마는
일곱번은 생각하지 않는 순간이 분명히 있기는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