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127

2023.8.23 나희덕 <귀뚜라미>

by 박모니카

’처서(處暑)‘ 아침을 맞는 생물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이미 허물로 땅에 앉은 매미들 위에 푸른 풀잎들이 더부살이 하자고 기웃거릴테고요, 쟁쟁거리던 모기입도 비꿀어질거구요, 무엇보다 귀뚜라미 등을 타고 올 가을기운으로 여름내 날 것으로 내보이던 팔 다리에 가슬거리는 얇은 천 한자락이 감싸고 돌겠지요. 어제는 칠석(七夕)이라고 알아서 견우직녀 상봉하는 기쁨과 이별하는 슬픔의 표징을 알려주는 소낙비와 무지개를 보면서 지인들과 담소하는 시간들이 참 좋았습니다. 자연의 이치에 인간의 언어가 부합되는 그 순간을 공유하며 산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는 생각도 했지요. 처서인 오늘부터 내일까지 비 소식이 있군요. 이번 비는 짧게 왔으면 좋겠습니다. 올 여름 비로 인한 상처가 좀 컸던가요. 어느새 논에는 ’벼 모가지가 다 나왔네‘라는 말이 스치고, ’대추알 익어가는디‘라는 말랭이 골목의 속삭임이 가깝습니다. 오늘은 아들이 군 훈련을 앞두고 머리를 짧게 자른다네요. 일찍부터 제 곁을 떠나서 독립생활을 했던 아들이라 큰 걱정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가는 그의 등 뒤에서 단단한 그림자가 돼주고 싶은 맘이 부모인가 봅니다. 핑계김에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점심도 먹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싶구요. 내일을 그리워하기 전 오늘, 바로 이 순간의 그리움을 두 손안에 담아 사랑하는 이에게 꼭 쥐어주고 싶은 날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귀뚜라미>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귀뚜라미 – 나희덕(1966-현, 충남논산)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 소리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8.23입대전1.jpg 칠석날 풍경1
8.23입대전2.jpg 칠석날 풍경2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봄날편지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