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131

2023.8.27 안도현 <입추>

by 박모니카

어디로 들어왔는지 어린 귀뚜라미 두 마리가 책방 안을 폴짝거립니다. 지켜보는 제가 카프카가 된 것처럼 새끼손톱만한 그들을 따라다니며 한참을 웅크리고 있습니다. 책방에 가을을 데려와서 고맙다고 해야할지, 서운타고 해야할지 생각하면서요. 벌써 가을이 오고 시간 가는게 싫다고 하니 딸이 말하더군요. 그래도 내년 봄보다 지금 가을이 낫지 않아? 라구요. 그러고 보니 맞는 말입니다. 어젯밤에는 핸폰 동결, 음악정지 하며 오로지 써야 할 일에만 집중했죠. 월말이라 가을 학기를 준비해야 할 학원의 여러 일들도 많아서요. 선택과 집중을 잘 고르면 또 자유로운 시간의 주인공이 되잖아요^^ 어제의 책방 손님 한분이 기억나는군요. 젊고 예쁜 아름다운 청년 한사람이 책방 안을 기웃,,. 얼른 일어나 들어오시도록 했죠. 왜 그런 사람 있잖아요. 밝은 빛을 보여주는 사람. 비록 나이는 어려도 좋은 첫인상이었어요. 혼자 여행하는 그녀의 발걸음에 겸손함과 당당함이 묻어났어요. ‘책방은 작지만 필사 한 시엽서를 직접 나누거나, 아침편지로 시를 전하거나 하는 일을 해요’라고 말했죠. ‘시를 필사하면 어떤 것이 좋을까요’ 라고 질문했어요. 여러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유로운 내가 되지요. 특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좋아함을 배가하는 방법으로 필사를 추천합니다.” 귀가 열려있는 그녀, 종이책을 넘기는 걸 좋아한다는 그녀와의 대화로 아름다운 토요일을 장식했습니다. 한번 갔던 여행지를 다시 가는 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책방하면서 다시 만나고 픈 청년이었습니다. 어젯밤도 말랭이 마을 에세이작업을 하면서 지나온 시간들을 들여다보았네요., 혼자서 웃고 감탄하고 기특해하고 고마워하고 자화자찬하며 한 줄 한 줄 마음을 써 내려갑니다. 올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붉은 대추 한 알 먹겠지요. 봄부터 여름내내 저와 함께 공부해온 어른들, 대추보다 더 붉은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나타날거예요. 오늘은 절기 지난 입추 때, 보내드리고 싶었던 시, 안도현의 <입추>입니다. 봄날의산책 모니카


입추 – 안도현(1961-현, 경북예천)


이 성문으로 들어가면 휘발유 냄새가 난다

성곽 외벽 다래넝쿨은 염색 잘하는 미용실을 찾아나서고 있고

백일홍은 장례 치르지 못한 여치의 관 위에 기침을 해대고 있다

도라지꽃의 허리 받쳐주던 햇볕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기별이다

방방곡곡 매미는 여름여름 여름을 열흘도 넘게 울었다지만

신발 한 짝 잃어버린 왜가리는 여태 한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다

한성부 남부 성저십리(城底十里)의 참혹한 소식 풀릴 기미 없다

시 두어 편 연필 깎듯 깎다가 덮고 책상을 친다

오호라, 녹슨 연못의 명경을 건져 닦으니 목하 입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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