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28 김현승 <책>
태풍소식이 있어서 그런지 하늘이 어둡고, 습기가 퍼져있는 아침입니다. 오늘은 말랭이마을 글방 어머님들 모시고 가까운 곳으로 현장학습 갑니다. 여름의 대표적인 꽃, 보랏빛 맥문동이 만개한 장항 송림숲으로요. 며칠전 답사겸 해서 다녀왔는데, 아마 그때보다 더 개화하여 예쁠거라고 말씀드렸죠. 오늘의 주제는 꽃길 걸으시며 시상을 모아서 글 작품 내시는 거예요. ‘오메, 갈수록 어렵고만.’이라도 엄살부리며 말씀하셔도 모두 다 머릿속에 생각창고를 넓혀가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아마 ‘글의 힘‘ 아닐까요. 소위 지식인들은 글방 어머님들의 기쁨을 모르실거예요. 글자를 알아가고 한 줄이라도 자기 맘을 글로 표현하는 기쁨을요. 주말동안 어머님들이 쓰신 글들, 한 줄 한 줄을 다시 보았지요. 읽는 저는 책의 구성을 어떻게 할까 하며 단순 읽기에 집중하면서도 동시에 느낀답니다. 당신 글을 보여주는 속내에서 울렁거리는 설렘과 떨림을. 이제는 부끄럽기보다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어. 다시 한번 써 볼까‘를 먼저 제안하니까요. 글에 대한 욕망은 아마도 먹고사는 본능을 넘어서는 초월적 본능이 아닌가해요. 그러고보면 참 좋은 세상에 살아요. 지금 사람이 수천년 전 태고적 무늬에 들어있는 글을 읽고 담론할 수도 있구요. 자기 취향대로 읽어도 좋은 수천 만권의 책들이 가까이 있어서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읽을 수 있죠. 종종 지나쳐서 부족함보다 못한, 정보과량의 사회에 살고있는 폐해를 염려할 정도임에도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하는 말은 진리입니다. 아침저녁 완연한 가을기운이예요. 하루 한쪽, 한쪽의 한 줄이라도 타인의 글일지라도, 내 기본 양식으로 만드는 책과 글 읽기 시간이 있기를... 산책과 함께 하시면 배가의 기쁨. 오늘은 김현승 시인의 <책>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책 – 김현승(1913-1975, 평남평양)
가장 고요할 때
가장 외로울 때
내 영혼이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책을 연다.
밤하늘에서 별을 찾듯
책을 연다.
보석상자의 뚜껑을 열듯
조심스러이 연다.
가장 기쁠 때
내 영혼이 누군가의 선물을 기다리고
나와 같이 그 기쁨을 노래할
영혼의 친구들을
나의 행복을 미리 노래하고 갈
나의 친구들을
나의 행복을 미리 노래하고 간
나의 친구들을
거기서 만난다.
아,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주택들아,
가장 높은 정신의 성(珹)들
그리고 가장 거룩한 그들의 일생은
거기에 묻혀있다.
나의 슬픔과 나의 괴롬과 나의 희망을
노래하여 주는 내 친구들의
썩지 않는 영혼을 나는 거기서 만난다.
그리고
힘주어 손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