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이야 방 윗목 아랫목 이란 말이 드물지만, 그래도 어느 방안에 들어가면 본능적으로 아궁이와 가까웠던 아랫목을 찾게 됩니다. 어젠 하루종일 내리는 비 탓이었던지, 소위 삭신이 쑤시더군요. 나이테에 생채기 하나 더 그어지는 소리였겠지요. 비 오는 날 누가 오랴 싶어 보일러를 3단으로 놓고 주저앉아 앞산을 보았습니다. 초겨울 잿빛하늘빛 같은 먹구름이 팽나무를 누르고 있어 계절감각이 순간 사라지는 듯... 그렇게 순간은 오고 또 다른 순간은 가버렸습니다. 골목길에 늘어진 대추 한 알을 사진에 담는데 지나가는 계절이 보이더군요. 싱싱했던 여름기상은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지고, 붉은 미소가 성글게 퍼져있더군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말대로 저게 저절로 붉어지겠습니까. 여름내 외쳤던 태풍, 천둥, 번개에 초가을 무서리, 땡볕, 초승달과 동거하다 보면 금새 둥글어져 있겠지요. 그걸 못 참고 유혹에 끌려 한 입 베어무는 저도 참 유별스럽습니다. 오늘도 월의 마지막일. 8월 한달 약속했던 일, 잘 지키셨는지... 제 것도 돌아보니 맘에 드는 실적이 없군요. 요즘은 피곤도 겹겹이, 심란함도 그림자처럼 딱 붙어있구요. 아마도 맘 속에 무거운 무엇이 있어서 그런가봅니다. ‘오늘 하루로 지난 시간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다면‘ 하고 가정법 문장 한 줄을 나눠보고 싶을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