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135

2023.8.31 오광수 <세월이 가는 소리>

by 박모니카

요즘이야 방 윗목 아랫목 이란 말이 드물지만, 그래도 어느 방안에 들어가면 본능적으로 아궁이와 가까웠던 아랫목을 찾게 됩니다. 어젠 하루종일 내리는 비 탓이었던지, 소위 삭신이 쑤시더군요. 나이테에 생채기 하나 더 그어지는 소리였겠지요. 비 오는 날 누가 오랴 싶어 보일러를 3단으로 놓고 주저앉아 앞산을 보았습니다. 초겨울 잿빛하늘빛 같은 먹구름이 팽나무를 누르고 있어 계절감각이 순간 사라지는 듯... 그렇게 순간은 오고 또 다른 순간은 가버렸습니다. 골목길에 늘어진 대추 한 알을 사진에 담는데 지나가는 계절이 보이더군요. 싱싱했던 여름기상은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지고, 붉은 미소가 성글게 퍼져있더군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말대로 저게 저절로 붉어지겠습니까. 여름내 외쳤던 태풍, 천둥, 번개에 초가을 무서리, 땡볕, 초승달과 동거하다 보면 금새 둥글어져 있겠지요. 그걸 못 참고 유혹에 끌려 한 입 베어무는 저도 참 유별스럽습니다. 오늘도 월의 마지막일. 8월 한달 약속했던 일, 잘 지키셨는지... 제 것도 돌아보니 맘에 드는 실적이 없군요. 요즘은 피곤도 겹겹이, 심란함도 그림자처럼 딱 붙어있구요. 아마도 맘 속에 무거운 무엇이 있어서 그런가봅니다. ‘오늘 하루로 지난 시간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다면‘ 하고 가정법 문장 한 줄을 나눠보고 싶을 뿐이죠.

오늘은 오광수시인의 <세월이 가는 소리>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세월이 가는 소리 – 오광수(1953-현, 충남논산)


싱싱한 고래 한 마리 같던 청춘이

잠시였다는 걸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른 지나 마흔 쉰 살까지

가는 여정이 무척 길 줄 알았지만

그저 찰나일 뿐이라는 게 살아본 사람들의 얘기다


정말 쉰 살이 되면 아무것도.

잡을 것 없어 생이 가벼워질까


쉰 살이 넘은 어느 작가가 그랬다

마치 기차 레일이 덜컹거리고 흘러가듯이

세월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요즘 문득 깨어난 새벽

나에게도 세월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기적소리를 내면서 떨어져 가는 기차처럼

설핏 잠든 밤에도 세월이 마구 흘러간다


사람들이 청승맞게 꿇어앉아 기도하는

마음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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