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9 도종환 <가죽나무>
역시나 손과 발이 움직이지 않으면 진정 알 수 없어요. 아무리 수 백번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해봐도 그것은 그림일 뿐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요즘은 꽃게 철, 가을에는 수컷 꽃게가 살찌는 계절이죠. 지인께서 싱싱한 꽃게를 싸게 주신다길래, 갑자기 간장게장이나 양념게장이 먹고 싶은거예요. 머리 속에서는 당연히 친정엄마 마법의 손이 있었죠. 말랭이행사를 준비하면서 한 어머님과 같이 동행해서 그분과 저는 각각 5kg씩 샀어요. 지인이라고 써비스까지 왕창받고요. 나름 생각했죠. 이걸 엄마에게 드리면 좋아하실거라고요. 그런데, 아뿔싸... 친정엄마가 요즘 병원에 다니시는 걸 잊은거죠. 왜 이렇게 나이가 먹어도 철이 없는지요. 어제밤 수업이 끝나고 귀가하니 밤 10시. 처음으로 꽃게를 다듬어보고, 엄마가 담으시던 순서를 떠올리며 양념을 해보았네요. ‘내일 새벽에 이 양념게장을 드려야지. 입맛 돌아오실까. 이게 뭔 맛 이다냐 해도 그냥 웃어야지‘ 별별 생각을 하며 꽃게를 양념했습니다. 써비스는 왜 이렇게 많이 주셨는지,, 쬐끔 원망도 하면서요.^^ 꽃게에 찔리고, 양념과 비린내에 절여진 손이 이 새벽에도 진한 노동의 냄새를 퍼트리네요. 산다는 것이,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이런거였는데,,, 아니 이런 순간이 몇 천 곱절이나 쌓이고 쌓여 지나왔을 터인데, 이제야 엄마의 손이 만들어낸 은혜를, 그 마음을 헤아립니다. 오늘은 말랭이 가을 골목잔치로 분주하겠군요. 일찍 움직여서 엄마에게 게장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생전 처음 딸이 만든 게장을 맛보시도록요.
오늘의 시는 도종환 시인의 <가죽나무>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죽나무 - 도종환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
내 딴에는 곧게 자란다 생각했지만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 꼬여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것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줄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 걸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가운데를 두 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른 게 있다면
내가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
잘라 줄 마음 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
부족한 내게 그것도 기쁨이겠지 때문이다
나는 그저 가죽나무일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