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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224

2023.11.29 함순례<사랑해>

by 박모니카

문화의 다양성은 무엇일까요. 세상엔 사람도 많고 그만큼 말 잘하는 사람도 많고요. 저는 문화란 말도, 게다가 다양성이란 말도 어렵던데요, 저 외에 타인들은 토론도 참 잘하는 듯 보였던 어떤 모임. 올해 말랭이 마을 글방 얘기 좀 들려달라는 제안을 받고 갔었던 자리였는데, 내 자리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두 시간 내내 재미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자리들이 낯설고, 그만큼 불편해하지요. 이 귀한 시간에 ’할 일이 태산인데’라며 하루종일 비워둔 학원과 학생들 생각으로 못내 답답했던 시간들이었죠. ‘아, 다시는 내 자리가 아닌 곳에 가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고 돌아왔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죠. 내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어느 모습의 자리에 있을때가 마음 편한가. 전 아무래도 제가 만든 자리를 무진장 좋아하나 봅니다. 그 자리에 일종의 ‘옳음‘이란 명제가 있으면 더욱 좋아하구요. 옳다고 생각하면 실천하고 싶어지니까요. 생각과 몸은 동일체라, 생각나는대로 행동하면 되니 얼마나 편한 자리인가요. 하여튼 저는 ’문화는 일이 아니다‘ ’문화의 다양성에서 전문가와 비 전문가와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 등등의 논제에 대하여 ’그런 것들은 모두 허탕이야‘라며 속으로만 소리쳤습니다. ^^ 포럼 주관자가 마지막으로 말씀 한마디씩 하라 하길래, 그냥 이렇게 대답했어요. “오늘의 주제를 걸맞게 토론하진 못했지만, 문화는 사람이 살아온 장터, 장터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없다면 생명이 없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문화의 얼굴도 다른 것 뿐이니 서로 인정하고 밀어주면 저절로 다양성이 보장받지 않겠는가 싶다. 나는 오로지 무엇을 하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길 바랄 뿐이다.” 라구요. 끝나고 나니 포럼 참가비가 있다네요... 그 돈으로 사랑하는 우리 학생들하고 간식이나 만들어 먹어야겠습니다. 오늘은 함순례시인의 <사랑해>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사랑해 – 함순례


이 둥근 말을 이 다정한 말을 왜 누르고 살아야 하지? 말없이도 알아듣고 말없이도 통하면 얼마나 좋아. 모르겠는 걸, 도통 모르겠는 걸 어떡하냔 말이지. 쑥스럽다거나 헤퍼 보인다는 것도 다 꼰대들의 철벽이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호접란에 물을 줄 때마다 속삭였더니 윤기가 도는 이파리 좀 봐. 피어나는 꽃잎을 봐. 그냥 미소가 번지잖아. 웃음이 툭툭 터지잖아. 온몸에 향기가 돌잖아. 사랑해, 라고 말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말이 아무것이 되어 마술을 부리게 되지. 역병의 그늘도 뒤집을 수 있는 이 말랑말랑한 말을 이 뜨거운 말을 왜 아끼고 살지? 우연히도 인간이라 불리며 이곳에 있는 너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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