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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238

2023.12.13 허호석<12월>

by 박모니카

가족달력에 들어갈 시 12편을 위해 그 몇 배의 시를 읽고 마음에 와 닿는 한 줄을 찾아냅니다. 가능하면 제 오형제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시인과 시대상황도 고려하면서요. 제가 이렇게까지 시간과 마음을 쏟으며 달력을 만들어가는 줄 모를거예요. 세상 모든 일이그런 것 같아요. 누군가의 덕이 있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이치. 깊고 어두웠던 세밑자리에 등불이 켜지면서 어느새 일년이라는 구의 중심에 오뚝이 서 있는 저의 모습도 보입니다. 퍼져나가는 빗살무늬 불빛은 마치 저와 맺은 인연들의 손짓 같습니다. 올해도 얼마나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는지요. 12월에 관한 시들을 읽어보면서 시인들의 마음도 저와 다르지 않음이 기쁘군요. 어제까지 동네카페 글쓰기 수업이 끝났습니다. 덕분에 저는 정말 귀한 글쓰기(시와 에세이)공부를 했구요. 그보다 더 소중한 인연의 그물 한편을 짰습니다. 오늘 아침은 초등학교 특별활동으로 동시로 쓰는 시화캔버스활동을 지도하는 날이네요. 학생들이 저를 만나,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시를 알고, 또 자신의 시를 쓸 수 있는 시간이라면 더없이 행복한 시간일거예요. 오늘도 동행하는 모든 분들, 꼭꼭 눌러담는 발자국마다 당신만의 추억이 새겨지길.... 허호석 시인의 <12월>을 들려드려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12월 - 허호석

언뜻, 또 하나 간다

세월의 가지 끝에 남아있는 잎새

29. 30. 31 헤아릴 겨를도 없이

공과금 쪽지처럼 어김없이 계산은 끝난다

세월은 12월 말 출구에서

나이테 통행증을 교부하며

가는 게 누구인데,

세월을 탓하지마라 한다

모든 것들이 가는 줄도 모르게 멀어져 간다

만남은 이별이 예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가

다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고

옷깃에 묻은 얼룩은 무엇이던가

지울까 말까 한 번쯤 뒤돌아보는

아직 이별이 삭지 않은 나는 강물이어라


여보야 우리 딱 좋은 만남인 것을

당신이 있으므로 내가 있음이니

동행하는 구불길인들 어디라도 외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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