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자기자신을 알아보는 동물은 사람을 포함하여 대여섯 종이라고 해요. 유인원, 까치, 코끼리, 돌고래, 물고기 중 놀래미 등이라네요. 소위 자기의식이 있는 종은 ‘자기 생각’을 하는 주인의식이 있는 종이라고 합니다. 그럼 ‘생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번 본 이미지를 눈을 감고 있어도 떠오르는 것은 표상(表相)인데 반해, 생각이란 이 표상을 섞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 없었던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을 ‘생각’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한 철학자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학자들의 이론적 정의 외에 제가 말하고 싶은 정의도 있어요. '생각은 행동을 길러오르는 두레박'. 문득 저의 두레박 크기와 모양에 새로운 변화를 주어야겠다 다짐하는 아침입니다. 아마도 올해를 그냥 보내자니 뭔가 아쉽고 허전해서 그런가봐요. ‘생각이란 행동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지요. 단지 그 길이 매우 변화무쌍하다는 것. 그 다양한 길을 어떻게 하면 갈고 닦을 수 있을까요. 이 역시도 정답은 없지만 미미하게라도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놀래미, 까치가 지닌 자기의식보다는 더 높아야 한다는 것을요. 매일 매일 밤이 더 깊어집니다. 어둠의 두께가 더 두꺼워질수록 발아래 숨어있는 자의식의 스위치를 켜고 송년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시와 함께 놀아보기>라는 행사가 있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시 <의자>를 쓴 시인 이정록시인도 오신다네요. 오늘은 이 시인의 <뒷편의 힘>을 들려드려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