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294

2024.2.7 이기철 <작은 이름 하나라도>

by 박모니카

학생들에게 ’명사(Noun)‘를 설명할 때 그 뜻의 정의와 함께 꼭 설명하는 문법용어가 있지요. 바로 명사의 종류를 나누어 ’셀 수 있는 명사‘와 ’셀 수 없는 명사‘에 대한 말이예요. 사실 어린 초등학생들(저는 6학년도 어리다고 생각하죠^^)이 이런 정의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모국어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도 어려워요. 문법서에서, ’셀 수 없는 명사‘ 중 ’고유명사‘와 ’추상명사‘를 설명할 때 더 많은 예시를 들어주지요. 어제도 초등 학생들에게 ’추상(抽象)‘이란 말의 정의를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사전적 의미로는 ’ 여러 가지 사물이나 개념에서 공통되는 특성이나 속성 따위를 추출하여 파악하는 작용‘이라고 써 있지만 이 말을 바로 이해되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요. 그래서 추상명사를 설명할 때는 바로 예시를 들어주며 정의를 유도하죠. ’물리적 존재는 보이지 않아서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져질 수 없는 감정이나 생각, 느낌 등을 뜻하는 단어. 사랑(love), 희망(hope), 진실(truth), 자유(freedom),평화(peace)... 이런 단어들이야‘ 라고 말해요. 그런데 한 학생이 말하더군요. “저는 ’사랑‘을 볼 수도 있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는데요?” 하면서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여주는거예요. ~~ 요즘 계속되는 보충수업으로 피로도가 최고치를 찍고 있던 판인데, 어린학생의 그 모습 하나로 교실은 한 순간에 사랑으로 넘실거렸습니다. 논어에 ’민이호학불치하문 (敏而好學不恥下問)-영민하여 배우기를 좋아하니 어린 사람에게도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이라고 써있지요. 언제 어디서나 이런 사람이 되길... 늘 깨어있는 사람이 되길... 어린 학생을 통해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알고보면 이 세상은 추상 개념의 명사들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내 마음의 모양그릇에 따라 다른 말로 변신되어 곳곳에 뿌리를 내리지요. 그러니 ‘내가 바로 말의 주인, 세상의 주인’입니다. 오늘 꼭 당신의 언어가 아름다운 추상공간 하나를 만들 수 있길 바랍니다. 이기철 시인의 <작은 이름 하나라도>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작은 이름 하나라도 - 이기철


이 세상 작은 이름 하나라도

마음 끝에 닿으면 등불이 된다

아플 만큼 아파 본 사람만이

망각과 폐허도 가꿀 줄 안다


내 한때 너무 멀어서 못 만난 허무

너무 낯설어 가까이 못 간 이념도

이제는 푸성귀 잎에 내리는 이슬처럼

불빛에 씻어 손바닥 위에 얹는다

세상은 적이 아니라고

고통도 쓰다듬으면 보석이 된다고

나는 얼마나 오래 악보 없는 노래로 불러왔던가


이 세상 가장 여린 것, 가장 작은 것

이름만 불러도 눈물겨운 것

그들이 내 친구라고

나는 얼마나 오래 여린 말로 노래했던가

내 걸어갈 동안은 세상은 나의 벗

내 수첩에 기록되어 있는 모음이 아름다운 사람의 이름들

그들 위해 나는 오늘도 한 술 밥, 한 쌍 수저

식탁 위에 올린다


잊혀지면 안식이 되고

마음 끝에 닿으면 등불이 되는

이 세상 작은 이름 하나를 위해

내 쌀 씻어 놀 같은 저녁밥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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