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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ul 01. 2024

은퇴 후 아내에게 놀란 3가지

은퇴에서 배우는 인생 4

은퇴 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


단연 아내다. 은퇴와 함께 가정 내 권력관계는 일거에 역전됐다. 현역 때 경력이 쌓이면서 맡은 자리와 수입이 짭짤하던 시절만 해도 호시절이 오래갈 줄 알았다. 웬걸, 이제 우리 집 실력자는 아내다. 나는 현실에 순응하면서 운전기사에 만능 조수로 각종 가사 보조에 임하고 있다.


고등학교 친구 하나는 은퇴 후 5년 가까이 아내와 매일 오피스텔에 출근한다. 아내의 요양보호사 파견 재가복지사업과 자신의 현역 시절 관련 일을 위해 얻은 월세 60만 원짜리 사무실. 처음엔 걸려 오는 전화를 밖에 나가서 받아야 하고 밥을 세끼 모두 같이 먹는 등 불편함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지금엔 어떨까. 만사가 자연스럽고 편해졌다고 한다. 가진 걸 다 내놓으니 특별히 숨길 것도 없고 눈치 볼 일도 없다는 것, 탈탈 털린(?) 남자의 심정일까. 가정과 아내가 생활의 중심이 된 지금, 새로운 권력관계가 정착된 결과일 것이다.



아내에게 배우는 은퇴 인생


은퇴한 남자에게 집안의 일인자는 단연 아내, 여전히 자존심을 지키며 사는 넘버원 남자들이 있다면 부러울 따름이다. 매일 출근이 사라진 상황, 모든 생활의 중심엔 '가정과 아내의 평화'가 있다. 나 또한 그렇다. 이제부터는 아내에게 배운다. 여자들의 생존 능력에 감탄하면서 ‘오늘도 무사히’를 기원한다. 은퇴 후 내가 아내에게 놀라면서 배우는 것 3가지를 정리해 본다.



1. 수다    


여자들은 수다에 강하다. 아내를 보면 놀랄 때가 많다. 평소엔 조용한데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분출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점심 무렵 친구들을 만나면 네댓 시간은 기본이고 저녁 늦게나 심지어 새벽까지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친구를 만나고 늦게 귀가해도 피곤한 기색은 없다. 오히려 눈이 반짝반짝, 뭔가 활력과 텐션이 넘치고 살맛을 느끼는 것 같다.


내가 친구를 만나고 온 날, 아내는 오히려 나를 보며 의아해한다. 두어 시간이면 귀가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만남은 심플하다. 은퇴하고 비주류파로 돌아선 후론 저녁 약속이라도 9시를 넘기는 일은 드물다. 혹시 아주 가끔 노래방이나 당구 같은 잡기, 술집 2차가 낀다면 모를까. 음주가무로 늦은 귀가가 일상이던 현역 시절이 가물가물하다.


 

2. 새 친구 사귀기


가장 놀라는 일이다. 최근 1~2년 새에 아내는 벌써 몇 명의 새 친구를 사귄 걸까. 평생학습관의 ‘시(詩) 감상’ 수업에서 만난 두 사람과는 친자매처럼 지낸다. 손위 두 사람이 어찌나 다정하게 대해주는지 수업에 갈 때마다 신이 나서 집을 나선다. 60을 앞둔 아내 스스로 이런 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놀라워한다.


다른 글쓰기 수업에서 가까워진 사람과는 마침 사는 동네가 가까워 종종 연락하며 떡이나 푸성귀를 나눈다. 브런치스토리에서 새 친구 사귀는 걸 보고는 신기함까지 느껴졌다. 라이킷과 댓글을 나누면서 친해졌다는데, 전철로 1시간이 넘는 거리여도 가끔 만나 식사와 차담을 즐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은퇴한 남자들에게 새로운 친구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누가 말이라도 걸어올까, 오히려 두렵다는 사람도 많다. 실제 나도 그런 편이다. 사귀고 싶은 마음이야 있지만 더 이상 뭔가에 엮이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 굳이 새로운 모험(?)에 나서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3. 감사 표현


최근 집안에 경조사가 있었다. 아내가 가장 꼼꼼하게 챙긴 건 ‘답례’다. 단순히 SNS로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는 게 아니다. 부조를 한 사람이라면 특별한 사정 있는 경우 아니면 모두 커피쿠폰을 보냈다. 밥을 사고 싶은 사람을 따로 챙긴 건 물론이다. 그건 비용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 아내의 세심한 정성에 놀랐다.


아내는 뭔가 고마운 일이 있으면 바로 감사를 표현하는 데 능하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친척이나 이웃에 나누는 '정'의 문화가 몸에 밴 덕분이다. 아내의 친정 가족들은 매사 감정 표현이 많다.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면 늘 함께 모여 축하를 나누는 게 일상이다. 반면 우리 집안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마음은 있는데 표현을 잘하지 않는다. 아내를 보면서 배워간다.



여자들의 생존비결은 무엇일까


여자들의 평균 수명은 남자보다 다. 그 비결이나 이유는 여러 가지, 아내에게서 몇 가지 모습을 본다. 수다와 새 친구 사귀기, 감사 표현에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공감력이 크게 작용한다. 아내는 눈썰미가 좋고 관찰력이 남다르다. 홍대 거리를 걷다 아내가 내게 묻는다. “최근에 우리가 갔던 식당 여주인이 금방 지나갔는데 봤어요?” 난 스쳐 지나는 사람을 건성으로 본다. '사람 보는 눈'은 좋은 친구를 사귀는 데에 꼭 필요하지 않을까. 친구가 될 사람인지, 빌런인지 순식간에 스캐닝하는 것도 능력이다.


사람들과 제대로 소통하려면 공감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을 전달해야 상대의 마음도 움직이지 않을까. 브런치스토리나 개인 단톡방의 댓글을 보면 그 사람이 진짜 성의가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느껴진다. 나는 여전히 그런 데 서툴다. 현재로서는 아내를 보좌하면서 계속 배우는 게 상책인 것 같다.


지방에 계신 86세 노모는 전화 통화할 때마다 내게 당부하신다. “나이 들면 친구도, 부모도 다 필요 없다. 날마다 보는 아내가 최고다. 무조건 맞춰주면서 살아라.” 젊을 때처럼 마냥 내 고집대로 살지 말고 아내와 잘 지내라는 뜻, 그게 아들에게도 좋다는 걸 아시는 것이다.



결혼하면 남자가 더 이익이다     


여자와 함께 지내는 게 남자에게 좋은 점도 많다. 하버드대에서 연구한 인간관계의 비밀을 밝힌 책 <행복은 전염된다> (2010)는 ‘결혼하면 남편이 더 이익’이라고 말한다. 장기 추적분석에 따르면 결혼 시 남성의 수명은 7년, 여성의 수명은 2년 정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배우자가 제공하는 이익은 경제 측면의 실질적 지원뿐만 아니라 정서적 사회적 지원이라는 혜택이 따른다. 특히 남성에게는 결혼 후 ‘어리석은 미혼남의 기행’을 포기하는 효과가 크다고 강조한다. ‘철이 든다’는 뜻이다. 가정을 꾸리면서 책임 있는 어른으로 사회적 통제를 받지만, 결과적으로 남성의 건강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은퇴 후 인생은 좋은 친구뿐만 아니라 특히 맘에 맞는 배우자가 중요하다. 아내가 명실상부 일인자 자리를 차지하는 게 서로에게 좋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더욱 겸손한 자세로 아내에게 배우고 잘해야 할 때라는 걸 실감한다. 은퇴한 후에야 진짜 인생을 배운다.





긴 인생에는 동반자가 중요하다




*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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