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50여 쪽 분량의 단편 소설, 놀라울 정도로 빨려들 듯이 금방 읽었다. 하루키 소설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10년 전에 나온 <여자 없는 남자들>에 실린 <독립기관>이란 특이한 제목의 소설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 시원한 열람실에 앉았다. 소설을 읽는 건 잠시 현실을 떠나 어딘가로 여행하는 기분을 안겨준다. 알 수 없는 세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인생 속으로 떠나는 그런 여정. 주인공은 쉰두 살의 성공한 성형외과 의사 도카이. 한 사람의 삶을 엿보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잔잔한 흥분 같은 게 나를 기분 좋게 어루만졌다.
이제 사람들은 소설을 읽지 않는 걸까
소설 읽은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나뿐 아니라 사람들이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경제 경영이나 자기 계발서처럼 큰 효용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소설뿐 아니라 사실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야기 세상과 멀어진 건 아니다. 알고 보면 브런치스토리가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보물단지 같은 곳 아닌가. 거기엔 세상 사람들의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삶이 넘친다. 사랑과 이혼, 행복과 불행, 우울증과 가정 폭력, 지구 반대편의 일상까지 뉴스에서나 접할 만한 이야기들이 클릭 한 번이면 눈앞에 펼쳐진다. 오늘도 나도 모르게 소설 같은 브런치 작가들의 이야기에 빠지는 이유다.
소설을 읽은 건 친구 덕분이다. 입사 동기 세 사람이 은퇴 후 매달 만난다. 60대의 일상은 만날수록 새로운 재미가 늘면서 화제도 달라진다. 서로 닮아가면서 놀라기도 한다. 은퇴 전에는 전혀 몰랐던 필라테스라는 운동에 셋 모두 빠져 지낸다. 그 친구는 요즘 전자책을 즐겨 듣는다고 한다. 산책하고 운동하는데 딱 좋다며, 최근 가장 재미있었다는 하루키 소설을 추천한다.
인생의 선을 지킨다는 것
<독립기관>은 한 남자의 삶의 방식과 파멸에 관한 이야기다. 짧지만 강렬하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있는 도카이는 결혼은 거부한 채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의 연애 상대는 주로 유부녀와 이미 연인이 있는 여자들. 그들의 관계는 암묵적인 ‘선’을 넘지 않고, 이별을 통보하면 쿨하게 떠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어느 날 열여섯 살 연하의 유부녀와 사랑에 빠지는 ‘탈선 사고’가 발생한다. 관계를 즐기지만 그녀는 도카이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빠진 뒤부터 도카이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힌다. 그가 그녀를 사랑한 순간, 그녀가 있는 그대로 맨 몸뚱이의 자신이 아니라 성형외과 의사라는 능력에 끌린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녀의 진짜 사랑이 또 다른 남자에게 있다는 사실은 그를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든다. 그는 점차 파멸의 길로 치닫는다.
기교적 삶과 인간적 삶
소설에서 말하는 ‘독립기관’이란 무엇일까. 도카이의 의견에 의하면 모든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특별한 ‘독립기관’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 어떤 거짓말을 언제 어떻게 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데, 그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 몸의 ‘독립기관’이 제멋대로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도카이는 성공 속에서 자유로운 삶을 향유하는 ‘기교적 삶’을 추구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지며 ‘인간적 삶’에 몸부림친다.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는 사랑 때문에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랑은 내 몸의 관장을 받지 않는 어떤 독립적인 기관을 사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독립기관’은 자신의 의지대로 부릴 수 없다. 마치 무릎을 쳤는데 다리가 앞으로 나가는 반사효과처럼.
안나 카레니나의 치명적인 사랑
<독립기관>을 추천한 친구는 소설을 읽으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생각했다고 한다. 특히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 중 하나로 꼽히는 그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체면과 위선이 지배하는 19세기 러시아 사회에서 안나는 젊은 장교 브론스키와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위험을 알면서도 소용돌이 같은 감정에 휩싸인 것이다. 바로 그 ‘독립기관’ 때문 아닐까. 진정한 사랑을 갈구한 안나는 끝내 기차에 뛰어들며 자기 파괴에 이른다. 하지만 안나의 삶을 마냥 불행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사랑을 찾아 인간적인 삶의 여정을 떠났다. 상류사회의 관습을 인형처럼 연기하는 기교적 삶을 거부한 것은 아닐까.
헤어질 결심의 연인들
2022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탕웨이 분)의 운명도 비슷하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지만, 그 사랑을 어쩌지 못해 결국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이끈다. 서래는 해준(박해일)에게 말한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 진짜 사랑은 사랑이 떠날 때 절절하게 시작된다. 가슴을 울리며 마음 속 깊이 젖어든다. 이별 후에도 우리가 쉽사리 사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해준의 삶 또한 기구하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어도 조직에서는 마음이 외로운 사람. 전형적인 형사라기보다 흔들리는 감성의 소유자다. 서래를 향한 해준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두고두고 화제가 된 명대사에서 폭발한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사랑한다는 대사가 등장하지 않지만 치명적이고 매혹적인 사랑 이야기다. 해준의 대사는 사실 도카이의 혼잣말로도 들린다.
불완전한 인간에게 보내는 응원
하루키의 <독립기관>은 결핍을 통해 우리 인간이 직면한 관계의 의미를 그려낸다. 마음을 나눌 상대를 찾지 못한 이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도 전한다.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지 않으려 ‘기교적인 삶’에 머물러있다면 그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감각적인 욕망은 충족할 수 있을지 몰라도 깊은 존재감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성공한 성형외과 의사가 아니라 맨 몸뚱이의 도카이로 사는 게 진정 인간적인 삶이 아닐까. 또한 서래나 해준, 안나 카레니나처럼.
하루키의 소설은 삶의 기교적이고 인공적인 면을 돌아보게 한다. 불완전하고 실존적인 고뇌야말로 우리 인간의 진짜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실수와 오류를 범하고 때로 실의와 실패 속에서 잠시 힘들더라도, 그게 진정한 나 자신으로 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응시하며 성찰할 수 있어야 다시 일어서는 힘 또한 차오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