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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Sep 17. 2024

60대 남자가 홍대 앞에 가는 이유

퇴직 후 달라진 일상


요즘에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홍대 앞이다. 날마다 출퇴근을 반복하던 현역에서 퇴직한 지 1년 반, 이제 나를 기다리는 사무실이란 없다. 하지만 여전히 거의 날마다 출근한다. 자주 가는 곳은 홍대, 신촌, 그리고 종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최근에는 홍대 쪽으로 발길이 분주한데, 60대 남자가 홍대 앞에 가는 이유는 뭘까.


흔히 홍대 앞은 쇼핑과 관광의 핫플, 먹고 놀고 즐기는 데 최고 인기 장소 중 하나로 꼽힌다. 근데 의외로 나 같은 퇴직자들에게도 매력적인 곳이다. 숨은 명소가 소리소문 없이 발길을 이끌기 때문이다.



1. 노는 것처럼 공부하기에도 좋은 곳


홍대 앞에는 카공하기 적당한 카페가 즐비하다. 카페야 대한민국 어디에나 많지만, 이용하기에 여러모로 편리한 도서관이 하나 있어 눈길을 끈다. 전철역에서 홍대 정문 쪽으로 가는 길목에 소재한 ‘마포 평생학습관(마평)’, 건물은 꽤나 오래됐지만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올해 봄에 깔끔하게 재단장했다. 마평의 핫플은 5층 마포리움, 미술 전문도서를 중심으로 한 카페형 열람실이다. 아이가 있는 가족이나 청소년부터 신중년들까지 연일 붐빈다. 2천 원짜리 가성비 커피도 마실 수 있다.


내가 마평을 애용하는 이유는 책을 읽고 대출하는 기본 서비스에서 개인별 학습과 각종 교양강좌 듣기, 영상자료 시청 등 시간을 보내는 데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하에는 수영장 등 체육시설뿐만 아니라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도 있다. 은퇴자들이 빠지기 쉬운 ‘삼식이’ 생활에서 탈출하기에도 좋다.


주변에는 가성비 식당이나 카페가 많아 골라 가면서 먹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나는 요즘 베트남 쌀국숫집과 일본 라면가게에 자주 들른다. 만원 1장 이내에서 만족스러운 점심을 즐긴다. 혼자 놀기에 좋은 곳이라 그런지, 마평 주위에서 비슷한 연배의 중장년층들과 종종 마주친다. 자격증 공부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마평의 5층 마포리움, 음악이 흐르는 카페형 열람실이자 휴식공간이다.



2. 젊고 활기찬 분위기에 빠진다


내가 홍대 앞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젊고 활기찬 분위기 때문이다. 아직은 파고다 공원을 주름잡는 형님들 사이에 끼고 싶지는 않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에 따라 나이 들어서도 얼마든지 젊은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핫플에서는 모든 것들이 새롭다. 자연스럽게 기운 생동하는 에너지를 얻는다. 어깨를 스치는 외국인들이 친근한 사이인 듯 알은체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거리의 간판이나 가게를 둘러보는 일도 재미있다.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즐기는지 감이 온다. 아이디어와 재치가 넘치는 가게 이름이나 간판, 색다른 분위기는 무딘 감각과 일상에 새로운 자극을 준다. 거리에선 여기저기 버스킹이나 즉석 공연이 열린다. 보기만 해도 저절로 젊어지는 듯한 기분에 빠져드는 순간이다.


나이가 들면 선배 동료들만 만나지 말고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라고 말한다. 앞으로 세상은 그들이 주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핫플 거리를 걸으면 느끼고 배우는 게 넘치고, 나도 모르게 흥이 솟는다.



3. 놀던 곳인데 노는 물이 달라졌다


사실 홍대 앞은 내게 새로운 곳은 아니다. 40대 무렵부터 종종 드나들던 곳이다. 홍대 대학원에서 저녁에 강의를 하고, 상상마당에서 글쓰기 강의를 들은 적도 있다. 지인 중에 홍대 교수와 근처에 사는 선배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홍대 주변을 자주 찾았다. 그 시절은 술 마시는 만남이나 회식도 잦았고, 나 또한 현역 한창때라 ‘야간 비즈니스(?)’에 주력하던 시절이었다. 이자카야 술집과 ‘에반스’ 같은 클럽에도 들락거리고, LP 뮤직바와 와인클럽에서 보낸 숱한 밤도 기억에 생생하다.


하지만 지금 홍대는 제법 다른 장소처럼 느껴진다. 익숙한 거리지만 가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전의 단골집은 대부분 문을 닫거나 간판을 바꿔 달았다. 추억의 거리를 지나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이제는 밤이 아니라 주로 낮에 머문다. 카페와 도서관, 식당을 지나가면서 같은 거리가 주는 색다른 느낌에 젖어든다. 세월이 흐르고 노는 물이 달라지면, 삶의 풍경 또한 질적으로 달라지는 것 같다. 내게는 ‘시즌2’라고 할 수 있는 홍대 앞, 술 없이 혼자 공부하면서 노는 게 즐겁다.



언제나 즉석 공연이 흔하게 열리는 홍대 거리, 오늘도 홍대에 가는 이유다.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가 말하는 것


우리가 가는 장소는 나를 말해준다. 퇴직 후에는 더욱 그렇다. 내가 오래 머무는 곳은 나의 일상이 무엇으로 채워지는지를 보여준다. 내 삶이 무엇을 지향하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시즌1’의 홍대는 내게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곳이었다. 지금 내게는 평생 현역을 준비하는 놀이터와 다르지 않다. 혼자의 시간을 견디고 즐기면서 학습과 놀이, 여가라는 축적의 자산을 채워가는 소중한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 후반부에는 자연스럽게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난다. 직장에서 맺은 수많은 관계는 퇴직과 함께 사라지고, ‘인생 친구’ 같은 소수의 사람만이 남는다. 행복한 노후, 성공적인 인생 후반부를 위해서는 자기만의 보물 같은 장소를 하나둘 만들어가는 게 좋다. 백세 인생, 평생 현역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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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사진: 홍대 앞의 거리 공연 풍경. 홍대 거리에는 늘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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