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 1년, ‘나 홀로 남자’로 버틴 비결
60대 남자, 여자들 속에서 살아남기
퇴직한 후 가장 달라진 일상은 출근할 곳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새로 시작한 운동 습관, 지난해 3월부터 아내의 권유로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어느새 1년 반이 됐다. 올해 봄부터는 아내와 함께 요가도 한다. 일주일에 두 번은 요가, 한 번은 필라테스, 이제 나의 운동 습관은 나름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운동하면서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 중 하나는 거의 항상 ‘나 홀로 남자’, 여자들 틈에서 운동한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전하다. 60대 남자에게는 조금 낯선 환경이다. 베이비붐 세대에겐 학교나 직장이나 남자들이 다수여서 ‘소수자로서의 경험’이 별로 없다. 지금은 어딜 가나 여자들이 다수, 상황이 180도 바뀐 걸 실감한다. 여자들 속에서 살아남기, 요즘 남자들의 도전 과제가 됐다.
더구나 나처럼 소심하고 붙임성이 없는 성격이라면 적응에 어려움이 있다. 자주 만나는 한 친구도 의욕적으로 필라테스를 시작했는데,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그룹 반에서 나 홀로 남자로 버티기가 만만치 않았던가 보다. 나와 비슷한 성격이라 남 일 같진 않다.
필라테스나 요가가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운동이라서 그런 탓도 있을 것이다. 남자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나 홀로 남자’로 1년 반을 버티면서 든 몇 가지 생각을 돌아본다.
1. 여기 ‘왜’ 왔는지를 생각한다
누구나 생소한 일을 낯선 장소에서 하려면 적응하기가 쉽진 않다. 처음 해보는 필라테스, 함께 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이 쓰였다. 혹시나 여자들이 나만 지켜보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필라테스란 운동 자체가 주는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동작도 새롭고 어려운 데다 상당히 힘들었다. 처음 몇 달, 운동 시간이 끝나면 영혼이 털린 듯 거의 탈진한 상태에 빠지곤 했다.
여자들 틈에서 운동하며 마음속으로 늘 여기 왜 왔는지를 생각했다. 바로 목적이다. 내가 진짜 바라는 일, 원하는 상태를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한 것 아닌가. 따지고 보면 타인의 시선은 이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세상만사 어떤 일을 할 때 힘들고 부차적인 게 신경 쓰인다면, ‘왜 이 일을 하는지’만 생각하면 된다.
더구나 나이 들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사실 혼자라는 건 인간의 숙명이고 기본값이다. 혼자의 시간을 잘 견디며 놀 줄 알아야, 퇴직 후 부쩍 늘어난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수 있다. ‘삼식이 생활’을 벗어나 ‘혼밥’에도 익숙해져야 하는 이유다. 여자들 사이에서 운동하는 일은 혼밥과도 느낌이 비슷하다. 밥을 먹는 일에만 집중하면 되고, 타인의 존재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운동할 때라면 동작을 따라 하기 바쁘고 내 몸 제대로 간수하는 게 급선무다. 운동 자체에 집중하면 된다.
2. 질서를 존중하며 되도록 스며든다
10명이 넘는 그룹 반에서 필라테스나 요가 같은 운동을 하면 은근히 자리를 둘러싸고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좋아하는 자리에서 하고 싶은 건 남자나 여자나 똑같다. 앞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찍 와도 꼭 뒤쪽이나 구석을 선호하는 여자들이 있다.
난 굳이 튀지 않으려고 웬만하면 맨 뒤 쪽에 자리 잡는다. 처음에 멋모르고 둘째 줄 구석 자리에서 하는데 내가 과민한 탓일까, 뭔가 레이저광선 같은 게 느껴졌다. 나중에 보니 그 자리를 고정석처럼 쓰는 ‘고참 선배님’이 있었다. 물론 정해진 자리란 없지만 좋아하는 자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현역 시절엔 대개 정해진 자리에, 조직 내의 질서와 관행이 존재한다. 퇴직 후 도서관(평생학습관)의 교양강좌에 참여하면서 가끔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난다.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불편을 주는 언행과 마주칠 때다. 가장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는 눈치 없이 말이 많은 사람이다. 자기소개를 하거나 질문 시간에 뜬금없이 말문이 폭발하는 사람이 있다. 분수와 염치를 지키는 건 사회생활의 필수, 나이 들면 더욱 중요해진다. 사람 사이의 예의와 질서를 존중하고 적절한 균형감을 유지하는 게 좋다.
3. 최소한의 소통과 친절은 기본
어디나 사람 사는 세상이다. 관계에서 기본적인 건 소통, 웃는 표정과 친절이 따르면 누구나 기분이 좋아진다. 자주 만나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약간의 대화가 오갈 기회도 늘어난다. 나는 늘 주변을 살피며 먼저 간단히 인사를 하거나, 혹시나 결례가 없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아무래도 연세 있는 분들이 남동생(?) 같았는지, 필라테스 시간에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있다. 간단한 안부를 나누며 서로에게 호의를 베푸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기분 좋게 한다.
사회생활을 오래 했어도, 나는 사실 여자들과 친해지는 일이 여전히 어렵다. 대화가 길어지면 마음에 없는 소리를 잘 못하는 편이다. 필라테스 같은 운동을 할 때는 간단한 인사 정도가 고작이지만, 도서관의 교양 강좌는 약간 다르다.
지난해 구청의 ‘시감상’ 수업 또한 남자는 나 혼자였다. 나는 웬만하면 수업 시간에 조금 여유 있게 도착한다. 근데 늘 나보다 더 일찍 오신 80대 가까운 여성분이 반가운 표정으로 내게 말씀을 건네시곤 한다. 나중에 보니 혼자 사는 분이어서 사람의 정이나 대화가 그리웠던 것 같다. 좀 더 다정하게 응대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지방에 홀로 계신 노모도 사람을 보면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적절한 여가활동이 건강한 삶을 이끈다
평소 여유시간을 잘 활용하는 게 행복한 일상을 만드는 데 중요하다. 특히 퇴직 후라면 더욱 그렇다. 평생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일뿐만 아니라 어떻게 건강 관리와 여가문화를 실천하는지가 행복을 좌우할 수 있다.
최근 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의 조사에 의하면* 여가 활동 부문별 만족도에서는 ‘운동과 스포츠 직접 하기’가 가장 높았고, 사회교류, 관광여행, 문화예술 관람 등이 뒤를 이었다. 여가활동 경험자의 만족도 1위 활동은 요가와 필라테스, 수영, 라켓스포츠, 해외여행 순이었다. *2023 하반기~2024 상반기 여가문화 실태 조사 결과(2024.9.23 발표).
요가와 필라테스의 만족도가 1위라는 게 눈에 띈다. 무엇을 하느냐도 관심이지만,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활동을 찾아서 꾸준히 하는 게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은퇴자는 특히 혼자 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여유 시간에 나만의 즐길 거리를 찾아 집중할 수 있어야 삶의 재미와 의욕 또한 높아진다.
모두가 자신만의 건강 비결을 통해 일상의 활력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인생 후반부를 사는 은퇴자들에겐 오늘도 소중한 하루, 소소한 행복이 하나씩 열리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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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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