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0일은 우리 문학사뿐만 아니라 역사에서도 잊지 못할 날이 됐다. 한강 작가가 수상한 노벨문학상은 아시아 여성으로는 최초이고 아시아인으로는 5번째, 121명의 수상자 중 5번째로 젊은 작가라고 한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날아온 희소식에 대한민국은 순식간에 기쁨과 환호로 축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전 세계 또한 한국의 작가가 세계적 권위의 노벨상을 받은 것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초의 노벨문학상, 그 의미를 3가지로 살펴본다. 작가 자신의 뛰어난 성취만이 아니라 K컬처와 한국 사회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우리 역사와 공동체의 삶 등 국가적 자산이 모두 담긴 소중한 성과이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3가지 의미로 살펴본다. ⓒ김성일
1. (문학) 특유의 시적인 산문이 보여주는 놀라운 성취
먼저 문학적 성취가 꼽힌다. 스웨덴 한림원은 선정 이유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밝혔다. 작가 특유의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의 작품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 한강의 글은 섬세하고 밀도 높은 문장으로 유명하다. 간결하면서도 은유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은 문학적인 매혹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한강 작품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피에르 비지우는 “그의 문장은 악몽마저 서정적 꿈으로 만들어... 문학 지평을 넓혔다.”고 평했다.
주제 의식 측면에서 작가는 폭력성, 가부장제, 인간애 등의 문제를 다양하게 탐구하면서, 역사적 트라우마에 정면으로 맞선다. 우리 안의 폭력성을 고발하면서도 서정적 문장을 통해 독자를 치유의 서사로 이끈다. 잔혹한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희생자에게 인간의 목소리를 부여한다. ‘증언문학(witness literature)’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게 한림원의 언급이다.
결론적으로 한강은 미학적 실험과 함께 인간 삶의 근원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다. 작품성과 역사성, 예술성과 사회성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로 선보인다. 한국의 특수성에서 출발했어도 어떤 경계를 넘어 세계가 공감하는 보편적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 문학이 변방에서 주류로 올라섰다는 의미도 크다.
2. (사회) 격동의 역사적 경험이 문화 자산임을 확인
한강의 작품은 개인의 성취를 뛰어넘는다. 한국 문학계의 축적된 자산이 반영된 것이고, 한국의 문화적 역량이 총체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한 개인의 영광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가 축하하고 환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작가는 “나는 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말했다. 혼자가 아닌 한국문학 100년의 전통과 역사가 그의 문장에 담겼고, 선배 문인들의 문화유산을 자양분으로 삼았다. 격동의 역사를 거치며 고통받은 사람들의 눈물과 고통, 피땀이 묻은 것이다. 작가의 인생을 바꾼 건 아버지인 작가 한승원이 보여준 ‘5.18 광주’의 사진첩이라고 알려진다. 한강은 “열세 살 때 본 그 사진첩은 내가 인간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5.18 광주’, ‘4.3 제주’ 등 한국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며 끈질기게 자신의 길을 개척한 데 경외감이 일어나는 대목이다.
K컬처는 역사적 경험이 문화적 자산으로 발전하는 공통점을 보인다. 분단과 이념 대결,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은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K콘텐츠에서 현실을 드러내는 강렬한 문제의식으로 작용했다. ‘한국적 리얼리즘’이 세계 문화계의 주목을 끌고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최초의 노벨문학상은 변방의 나라인 한국, 소수어인 한국어라는 약점을 이겨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언어가 매개인 문학은 그만큼 전 세계적 소통과 이해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이 1인치의 장벽(‘자막’)을 이겨냈지만, 문학은 몇 배의 어려움이 있어 ‘번역’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수많은 번역가와 한국문학번역원, 대산문화재단 등의 꾸준한 번역 노력이 결실을 거뒀다는 점도 의미 있다. 한국 문학의 언어가 세계 시민의 언어가 된 뜻깊은 순간이다.
K컬처의 부상과 확산 - 생활문화와 기초예술까지 ⓒ김성일
3. (K컬처) 대중문화에서 생활문화와 기초예술로 확산
문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을 받은 것은 K컬처 측면에서도 꿈같은 일이다. 이번 수상은 한국의 국력과 한국문화의 높아진 위상이 반영됐다는 지적이 많다. AP통신은 “기생충, 오징어게임, BTS처럼 한국문화의 세계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전했다.
K컬처는 1990년대 동아시아에 일어난 한국문화의 인기를 출발점으로 본다. 팝, 영화, 드라마와 같은 대중문화가 주도하면서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파급되기 시작했다. 2020년 전후 K컬처 3대 분야는 세계의 공인을 받으며 화려하게 부상한다. 이후 음식, 뷰티, 관광 등으로 인기를 이어갔고, 마침내 문학 분야에서 정점을 기록하게 됐다. 최근 클래식, 미술, 뮤지컬 등의 인기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문학은 문화의 기초이자 정수로 꼽힌다. 언어와 텍스트를 기반으로 모든 문화예술의 뿌리를 형성한다. 그만큼 한 나라의 정체성과 핵심이 담긴다. 스포츠의 경우 과거 권투, 레슬링 같은 투기가 우리의 주종목이었다. 이후 구기가 부상했고 지금은 기초 스포츠인 육상과 수영에서 메달을 딸만큼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문학의 최고상 수상 또한 자연스러운 문화 성장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마침내 이룬 성취라는 생각이 든다. K컬처가 성숙의 단계에 진입했다는 뜻으로도 읽게 한다.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다.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우리에게 무거운 과제도 던진다. “한국인들은 책을 읽지 않으면서 노벨상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이 있다. 한국인 10명 중 6명은 일반 도서를 연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2023 국민독서실태 조사). 갈수록 ‘읽는 사회’에서 ‘보는 사회’로 바뀐 시대적 흐름과 환경 탓도 있겠지만, 씁쓸한 현실이다.
수상을 계기로 문학과 독서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고 사회적 열풍으로 확산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문학과 출판, 독서가 선순환으로 발전하는 저변과 생태계 확립도 중요한 과제다.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가들의 수상 소식도 이어지길 기대한다.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우리에게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요한 건 계속해서 한국의 문학과 문화예술의 창조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일이다. K컬처가 대중문화와 생활문화, 기초예술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화제에 오르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관심과 지혜를 기울여야 할 때다. 우선은 가까이에 있는 책부터 펼쳐보는 게 좋겠다. K컬처는 우리 일상과 먼 곳에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