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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한국에서 살아남는 법

일상에서 자신의 욕망을 바라보고 길들이는 방법

by 김성일

2025년 여름은 길고 무덥고 변덕스럽다.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 변화에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살아남을지 분투하는 날이 늘어간다. 뜻밖에, 이번 여름은 내게 특별했다. 강원도의 한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짙푸른 바다가 보이는 경포대에서 호캉스를 즐겼다.


오랜만에 조용히 ‘나’와 자연을 돌아보면서 빠져든 것은 의외로 ‘욕망’이란 화두였다. 서울을 떠나 호젓한 강원도에서 보낸 시간은 단순한 장소의 변화를 넘어 내게 도시와 문명이 주는 온갖 소음과 혼란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거리 두기의 효과일까, 살아가는 방식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됐다.


기적의 한국을 만든 에너지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움직이는 욕망에 따라 하루하루 살아간다. 욕망은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다. 개인의 삶을 추동할 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의 역사를 이끌어온 동력이다. 욕망은 창조적 에너지면서도 파괴적 속성이 강하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면서 욕망의 양면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날마다 실감한다.


김영민 교수의 『한국이란 무엇인가』는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결정적 범주로 ‘욕망’을 지목한다. 한국은 단순한 지리적 실체가 아니라 집단적 욕망이 교차하고 충돌하는 장(場)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의 욕망은 욕망 그 자체보다 욕망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느끼는 ‘결핍’의 부끄러움이 크다고 말한다.


사실 욕망은 한국 사회를 이만큼 성장시킨 원동력이다. 그 바탕은 가난과 식민지 경험, 전쟁이라는 결핍의 조건에서 형성됐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 위에서 시작된 경제 성장, 민주화를 향한 열망, 세계로 뻗어나간 한류와 K컬처는 모두 욕망의 산물이다. 한국인은 끊임없이 ‘더 나은 것’을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불가능해 보였던 것들을 성취했다.


돌아보면 나의 삶 또한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동과 맥을 같이한다. 1960년대 궁핍한 한국, 고향인 남도의 산골은 모든 것이 ‘결핍’ 상태였다. 한국이라는 나라처럼 나 또한 성장과 인정의 욕구에 목말라 높은 곳을 보며 살았다. 한국은 아프리카 수준의 후진국에서 불과 40여 년 만에 일약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소심한 산골 소년은 서울 특별시민의 일원이 됐고 전 세계 수십여 나라를 여행하며 이제 세계시민으로 살고 있다.


갈수록 폭주하는 욕망의 나라



욕망의 철학자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다. 타인의 시선과 비교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정의하고 확인한다는 의미다. 한국 사회는 끊임없이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욕망의 좌표를 정립한다. 아파트 평수, 학벌, 직장, 연봉, 외모 등은 그 자체의 효용을 넘어서 욕망의 위계를 나타내는 기호가 된다.


한국인은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치를 바라보고, 한국 안에서는 개인들끼리 서로를 비교한다. 이는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집단적 욕망이 작동하는 은밀한 방식이다. 내가 욕망하는 것은 단지 ‘무언가’가 아니라, 타인보다 앞서거나 적어도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왠지 불안함을 느끼는 게 현대 한국인의 심리 상태 아닌가. 이런 비교 심리는 부러움을 넘어 결국 질투와 질시, 갈등과 분노의 단계로 증폭된다.


이렇듯 욕망이 무한 경쟁의 논리로만 작동하면, 사회는 극심한 피로와 불신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번아웃’, ‘N포 세대’, ‘헬조선’ 담론 등은 폭주 기관차 같았던 욕망 과잉 사회의 반작용이다. 욕망이 더 이상 꿈이나 비전으로 제시되지 못하고, 오히려 부담과 강박으로 다가올 때 그것은 삶을 파괴하는 어두운 힘이 된다.


욕망을 대하는 법



그렇다면 우리는 욕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욕망은 인간의 근본적 조건이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성이다. 우리 삶의 피할 수 없는 모순과 양면성을 드러낸다. 한국의 급격한 성장과 문화적 성취를 이끌었지만 동시에 피로와 소외를 낳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김영민 교수는 인간의 본질을 욕망의 유무가 아니라 욕망에 대한 ‘태도’에서 찾는다(동아일보. 2025.8.20). 욕망의 대상 앞에서 날뛰면 ‘짐승’이고 모든 욕망을 제거하면 ‘사물’인데, 욕망을 긍정하면서 통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된다고 한다. 욕망의 대상 앞에서 잠시 묵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욕망을 무조건 억누르거나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조율할 것인지다. 우리 삶과 한국 사회의 미래는 욕망을 어떻게 성찰하고 재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욕망을 무조건 억압하거나 방임하는 대신, 공동체적 성찰과 지혜를 통해 성숙한 삶의 동력으로 바꾸는 게 필요하다. 개인 욕망과 공동체의 욕망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과제다.


일상에서 욕망 길들이기



일상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작지만 의미 있는 ‘생활 속의 실천’에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 각자가 일상에서 자신의 욕망을 성찰하고 조율하는 실천적 행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라캉의 시각에서 보면 타자의 욕망을 추종하는 데서 벗어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묻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의 욕망을 아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다.


이번 여름 나는 매일 습관적으로 방문하던 포털의 뉴스, SNS를 멀리하며 ‘디지털 디톡스’ 세상으로 들어갔다. 프로야구 결과에 일희일비하던 순간에서도 벗어났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면서 느릿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느새 두 달째, 점점 욕망의 온도계 수치가 낮아지는 걸 느낀다. 뉴스가 궁금하면 도서관에서 주간지를 읽으면서 세상의 속도를 한 템포 늦춰 따라간다.


8월에는 독서클럽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간 매달 만나는 친구들과 느슨하게 책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제 전문적인 독서 커뮤니티에 가입해 활동한다. 독서와 영화 보기, 체험활동, 인문학 공부 등 다양하게 진행하는 모임은 내 생활에 활기와 설렘을 준다. 새로운 사람과 어울리면서 일상에서 다름과 다양성을 배우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이런 게 정말 내가 원했던 모임이라는 걸 느낀다. 왁자지껄 술 마시며 인생을 소비하는 모임이 아니었다. 이렇듯 일상에서 진짜 원하는 일을 하나씩 할 수 있다면 내 삶이나 우리 사회 또한 활기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결국엔 더 나은 공동체를 향한 길이기도 하다.





*표지 사진: 경포대 숙소에서 바라본 해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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