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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점 투명해지고 있다

기술 과잉 시대의 딜레마, 나는 과연 자유로운가

by 김성일

개인정보 노출 문제가 심각하다. 올해 들어 대형 해킹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지난 4월 메이저 통신사의 보안이 뚫려 일대 혼란과 유심 교체 소동이 일더니 카드사, 쇼핑사이트 등에서 연달아 사고가 터지고 있다. 높은 디지털 전환 비율에 비해 보안 투자가 낮아 한국이 ‘해킹 맛집’(?)이 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며칠 전엔 정부의 통합정보센터에 화재까지 발생해 국가 기간 전산망마저 비상이 걸렸다.



서로 돈 받아 가라는 손짓


새 정부 출범 이후 2차례에 걸친 민생 회복 소비 쿠폰의 지원 과정에서 이상한 ‘러브콜’(?)을 많이 받았다. 여러 금융기관, 카드사, 각종 페이 등에서 “어서 돈 받아 가세요”하며 시시때때로 알려왔기 때문이다. 국민 다수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사실 거래하는 은행과 카드사가 둘 정도에 불과하다. 매사 단순한 걸 선호하고 모험을 싫어한다. 주식이나 투자와 담쌓은 지도 오래다. 근데 내 정보를 갖고 있는 곳이 왜 그리 많을까.


문자 메시지나 SNS에는 여전히 선거운동이나 각종 상품홍보, 알림 등이 수시로 쌓인다. 10여 년 전에 근무한 지역 도시에서는 실시간 선거운동 홍보가 계속 날아온다. 주고받은 명함의 여파일 것이다. 지우고 차단해도 좀비처럼 집요한 게 그들의 생존방식이다.



한국의 놀라운 기술 변화 대응


사실 한국만큼 시대 변화와 기술 발달에 민감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1960년대 이후 변화상은 눈부실 정도다. 우리는 산업화 시대에 아프리카 수준의 후진국으로 출발했지만 불과 30여 년 만인 1990년대 말에 선진국 진입의 기틀을 마련했다. 선진국 따라잡기라는 전략으로 ‘정보화 시대’의 선도 국가로 부상한 것이다.


한류와 K컬처의 성공요인 중 하나도 시대 변화를 빠르게 읽고 대응한 점이다. K팝의 부상은 세계의 음악 트렌드인 ‘보는 음악’을 적시에 수용하고 디지털 음원과 유튜브 음악시장에 발 빠르게 뛰어든 게 주효했다. 2010년대 후반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은 K드라마의 세계 확산에 ‘게임체인저’로 작용했다.


최근에는 온 국민이 AI 열풍에 빠져있다. 뉴스나 기사, 교육이나 강의 프로그램은 “AI가 시대의 대세이니 얼른 여기로 오라”고 재촉하듯 부른다. 모르면 시대에 자꾸 뒤떨어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 사실 나도 지난 7월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유능한 조교처럼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진작 쓰지 않은 걸 후회할 정도다.



AI시대, 이대로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AI 시대의 그늘이나 부작용도 만만찮다. 속도 과잉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최근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화제다. 베니스영화제 출품으로 세계의 호평을 받았는데, 막상 국내 개봉을 하고 보니 호불호가 갈린다. 지난주 개봉 이틀째에 봤는데 아내는 호, 나는 불호였다. 영화는 갑자기 실직한 가장(만수)의 고군분투 생존기를 그린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연출과 메시지, 미장센이 블랙코미디 속에서 빛난다. 서사의 몰입도와 긴장감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실직의 이유는 구조조정과 인공지능 시대의 고용시장 변화다. 영화의 엔딩이 섬뜩하다. 재취업을 위해 가상의 적을 제거하고 가까스로 살아남지만, 만수가 근무하는 곳에 사람이라곤 혼자뿐이다. 모든 관리가 기계로 대체된 일터는 SF영화의 미래 가상공간처럼 적막하다. 그는 살아남은 자의 안도로 웃음을 띠지만, 관객은 디스토피아 같은 공허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만수 또한 머지않아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라는 예감을 떨칠 수 없다.



기술이 인간을 압도하면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될까. 모든 인류가 행복하고 평화로운 세상일까, 아니면 인간성이 사라지는 건조한 사회가 되고 말까. 조지 오웰의 『1984』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으로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어두운 미래를 그린다. 문제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억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언제든지 인간은 사라지고 진실은 조작되고야 만다.


2013년에는 역사상 최고의 국가기밀 폭로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미국 국가정보국(NS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정부의 전 세계적인 무차별 감시 실태를 폭로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2003년 설립 후 가파른 성장세로 미국 20대 기업에 진입한 빅데이터 전문기업 ‘팔란티어’가 주목을 받는다. 두 기관(기업)은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AI 첨단 데이터 시스템 속에서 철저한 감시 체제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술이 과연 인간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게 하는 사례다. 그들의 시스템은 지금도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거대한 기술 자본과 데이터 알고리즘에 의해 일상을 감시당한다. 소셜 미디어 속 ‘좋아요’와 검색 기록, 위치 추적은 우리 스스로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감시다. 스마트폰은 우리가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모든 것을 기록하고 저장하며 보관한다. 그 데이터는 언제든 누군가가 들여다볼 수 있다. 또한 문밖을 나서면 우리의 행적은 샅샅이 남겨진다. ‘안전과 보호’라는 명분으로 ‘모니터링과 추적’은 이뤄진다.



인간을 위한 기술


가끔 놀랄 때가 있다. 혹시나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가 내게 닥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사건 사고가 반복되면서 갈수록 불안한 마음이 커진다. 기술이 발달하고 서비스가 다양해질수록 나는 더욱 쉽게 드러날 것이다. 개인정보 활용에 동의하는 순간 언제, 어디서 나를 들여다볼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마냥 활용을 거부할 수도 없는 일, 기술 과잉 시대의 딜레마다. 우리는 과연 안전하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결국엔 스스로 개인정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의식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를 우리 사회와 기업, 국가가 어떻게 대하는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우리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익만 추구하고 의무는 소홀히 하는 부도덕한 기업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기술을 만드는 건 인간이다. 우리 스스로 의식 있는 개인으로 살아야 인간을 위한 기술이 가능하다. 그래야 우리 사회와 미래 또한 건강하고 균형 있게 발전할 것이다.






*표지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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