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아도 유일무이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2024)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요즘 젊은이들의 달라진 풍속도를 실감 나게 그리고 있어서다. 자유로운 영혼의 재희(김고은)와 멋진 남자 흥수(노상현)가 한집살이를 시작한다. 포스터를 보면 영락없이 그들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인다.
근데 흥수는 게이라는 비밀스러운 성적 취향을 가진 남자다. 동거는 요즘같이 팍팍한 시대에 흔해진 ‘셰어 하우스’. 거침없이 좌충우돌하는 재희에 비해 흥수는 매사 자신감 없이 눈치를 보며 지낸다. 그런 흥수에게 어느 날 재희가 되묻는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
차별과 편견이 심해지는 시대, 영화는 평범하지만 뭔가 색다른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거대한 도시 속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사랑을 꿈꾼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의 사랑은 특별하다’가 아니라 ‘이 사랑은 오직 우리만의 것이다’라고 말한다. 나다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 차이는 결정적이다. 전자는 비교의 언어이고, 후자는 고유성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퇴직 3년 차 가장 놀라운 변화는 ‘나 자신’과 친해지는 데서 시작한다. 현역 때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바빴는데 이제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나를 알아가는 게 즐겁고 새로운 관심거리가 이어진다. 무엇보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감하고 있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수많은 답 중에서도 ‘자신을 잘 아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엔 ‘나는 누구인지’에 관한 질문이다. 모든 인간이 직면하는 삶의 주제이자 철학의 출발이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나는 특별한 사람일까’라는 질문 앞에 선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고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세상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소중한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하다. ‘특별하진 않아도,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걸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특별함이란 사회가 부여하는 서열적 언어다. 특별한 존재가 되려면 누군가보다 더 뛰어나거나 주목받아야 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이 줄 세우기의 논리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인스타그램이나 SNS의 화려한 일상, 수치화된 팔로워나 구독자,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각종 랭킹 시스템은 우리에게 ‘특별해야 존재할 수 있다’는 강박을 심어준다.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2010)에서 현대인은 ‘성과의 주체’로 살아가며 자기 자신을 끝없이 착취한다고 말한다. ‘너는 할 수 있다’는 과잉 긍정의 언어가 오히려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특별함이라는 강박적인 욕망에 자신을 소모한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는 인식은 이런 자기 착취의 사슬을 끊는 행위다.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나라는 존재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사유의 전환이다.
특별하지 않다는 자각은 패배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의 시작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삶을 살 수 있어서다. 유일무이함은 비교의 언어가 아니라 존재론적 진술이다. 나는 그 누구의 대체물도 될 수 없고, 그 누구도 나의 삶을 완전히 반복할 수 없다. 유일무이함은 성취가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고유한 몸과 기억, 관계의 결을 지닌다. 하이데거가 말했듯, 인간은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다. 우리는 어떤 의도나 선택 이전에 이미 특정한 시간과 공간, 관계 속에 놓여 있다. 나의 유일무이함은 거기서 비롯된다.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동등한 삶의 무게를 지닌다. 그 누구도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고 나의 기억으로 오늘을 살 수 없다. ‘특별하진 않아도 유일무이하다’는 문장은 모순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이중적 진실을 드러낸다.
“그리 대단한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그냥 사는 사람도 없다. 모순 없는 두 문장을 잇는다.”
- 은유, 『아무튼 인터뷰』(2025). 51쪽.
퇴직한 후 내가 가장 즐겁게 몰입하는 건 ‘글쓰기’다. 글쓰기는 단지 쓴다는 행위 자체를 넘어선다. 책 읽기나 영화 보기, 좋은 강의 듣기, 친구와 수다 타임, 여행이 모두 글쓰기로 귀결된다. 내 삶의 모든 순간이 느낌과 생각에 담겨 글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면 말할 수 없는 충만감이 든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소소한 의미를 찾으며 삶을 주도적으로 바라본다는 느낌이 따르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고 못쓰고의 문제가 아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시간이 멈춘 듯, 조용히 머무는 시간 자체가 좋다. 현역 시절엔 잘 몰랐는데, 왁자지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지내는 게 나와 맞다는 걸 절감한다.
쓰는 일은 내가 살아서 존재한다는 걸 감각하는 시간이다. 지난여름 AI를 이용하면서는 나라는 사람을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글을 쓰면서 다양한 자료와 정리 포인트를 얻는 데 AI는 유용하다. 하지만 결국엔 ‘나의 이야기’가 들어가야 글이 살아난다. 인공지능의 문장은 번드르르한데 재미나 감동이 없다. 내가 느낀 생생한 감정과 독특한 경험, 그런 이야기는 오직 나만 할 수 있다. 그런 고유한 순간이 내 삶을 충만하게 한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는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는 유일무이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나를 불안해한다. 성취로만 존재의 가치를 측정하는 시선에 길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인간적 성숙은 바로 ‘평범함의 존엄’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한다. 나의 하루가 누군가의 뉴스에 오르지 않아도, 그 하루의 감정과 사유는 세계에서 유일하지 않은가.
갈수록 자신을 바라보며 알아가는 시간이 좋아진다. 그리 특별하진 않아도 고유한 존재로 살아가는 순간을 돌아보며 행복을 체감한다. 그게 바로 나답게 사는 길이다. 스스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곁의 사람들 또한 소중하게 다가온다. 각자의 유일무이함은 타인과의 소통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소중한 나와 그들에게 감사한다.
* 표지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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