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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Aug 14. 2022

이순신 장군보다 왜군 장수가 멋있다고요?

- 이순신과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을 빛낸 사람들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봤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 일상 회복이 가깝게 다가온 걸 실감한다. 공교롭게 두 편의 영화에 박해일이 주연으로 출연했다. <헤어질 결심>의 엘리트 형사 해준과 <한산: 용의 출현>의 이순신 장군이다.      


전편 <명량>에 이어 내년 3부작 <노량> 편까지 이어질 이순신 장군 이야기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것 같다. 나라와 민족을 구한 최고의 영웅으로 시대를 넘어 이순신이 갖는 지속적인 생명력 때문일 것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국뽕’을 줄이고 최대한 균형감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였다. 특히 통쾌한 해상 전투의 스펙터클은 무더위에 찌든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에어컨 빵빵한 영화관에서 팝콘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먹으며 등을 편안히 기대고 보는 영화가 웬만한 여름 피서로 손색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눈에 확 들어오는 다른 인물이 있었다. 왜군의 총사령관인 와키자카 야스하루. 냉철하면서 판단력이 빠르고 때로 과감하고 잔인한 성격까지  존재감을 발산한다. 한 달 전쯤 용인 전투에서 1,600명의 왜군으로 8만여 명의 조선 연합군을 기습 공격해 대승을 거둔 와키자카는 자만하거나 무모하지 않다. 변요한이란 배우를 사실 처음 알았다. 그의 팬이 늘 것 같다.


와키자카는 다른 면에서도 상당히 흥미로운 스토리를 보여준다. 한산대첩에서 패해 조선의 추격 선단을 피해 무인도에서 미역만 먹으며 10일간을 버텼다고 한다. ‘미역 장군’이란 불명예를 남겼지만, 자신의 완패를 가감 없이 기록으로 남기는 자기 성찰적인 면도 보인다. 한산대첩이 열린 날인 7월 8일 미역을 먹는 풍습이 지금도 후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전장에서 운명처럼 만났지만 와키자카는 적장 이순신을 흠모하고 경외감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와키자카에게 23전 23승 불패의 신화적 인물인 숙적 이순신은 '넘사벽'의 강적이었을까.      


와키자카는 상황판단이 신중하고 현실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다. 임란 직후 도요토미 정권의 몰락과 에도막부 수립의 계기가 된 ‘세키가하라 전투’(1600)에서는 기민한 대처능력으로 승자의 대열에 선다. (나중에 패퇴하는) 서군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 편으로 말을 갈아탄 것이다. 말년에는 불교에 귀의하고 천수를 누리다 73세에 세상을 떠난다. 한번 줄을 잘못 서면 멸문할 수 있는 사무라이 시대에 와키자카 가문은 살아남아 메이지 유신을 넘어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다.      


이순신 이야기는 무궁무진한 발굴과 변주가 가능한 콘텐츠의 보고다. 적장까지도 포용하며 영웅담의 내용을 생생하게 채운다. 적장이 찌질하면 승리의 무게가 반감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서 한 인간이자 리더로서 이순신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고 깊이 있게 발전한다는 걸 느낀다. <한산>에서 이순신은 치밀한 전략가로서 조용한 카리스마를 보인다. 과묵하고 신중하며 고뇌하는 모습이 많아 와키자카와 대비된다. 경청의 미덕이 과다해서 때로 답답한 느낌이 들 정도다. 원균의 허튼소리와 어깃장에 한 방 날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은데 꿋꿋이(?) 인내심을 발휘한다. 결국 전장에서야 액션으로 보여준다. 순간, 1주일 전에 본 <헤어질 결심>의 박해일이 자꾸 오버랩됐다. 사랑 앞에 주저하고 신중한 채, 서서히 스며들다가 종국엔 '완전히 붕괴하고 마는' 해준. 물론 이순신이 그렇지는 않지만, ‘왜놈 칠 결심’이 아주 신중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순신의 위대한 승리에는 위기 앞에 몸을 던진 많은 수하 장군과 병사들이 있었다. <한산>에서 안성기가 분한 광양현감 어영담은 당시 오랜 지역 근무로 ‘남도의 인간 GPS’였다고 한다. 정보전과 첩보전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던 정보름(김향기)이나 임준영(옥택연) 같은 인물, 판옥선과 거북선 밑바닥에서 죽어라 노를 젓던 격군(格軍)들도 잊을 수 없다. 영화 <명량>에서는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 격군이 말한다.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 거 알기나 할랑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영웅인 이순신과 영화 <한산>을 활용한 마케팅이 활발하다. 임진왜란 시절 삼도수군 통제영이 있었던 통영에서는 '통영 한산대첩축제'가 8월 6일부터 14일까지 열렸다. 한산대첩과 이순신 장군 행렬 재현, 불꽃놀이가 여느 때보다 화려하고 성대하게 펼쳐졌다.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는 <한산>의 메인 촬영지인 여수 돌산읍의 진모지구 활용방안을 고심 중이다. 매년 6월 '옥포대첩축제'를 여는 경남 거제시는 최근 인스타그램에 이순신과 나대용 계정을 다시 개설해 인기리에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이순신 영웅담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재조명되고 무대 뒤의 이름 없는 영웅들을 기리는 작업이 다양하게 이어졌으면 한다. 그것이 나라의 위기 앞에 아낌없이 헌신한 모든 이순신을 더욱 빛나게 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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