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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타임 Dec 23. 2021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기억에 남기기

"그래서 요즘 잘 돼가는 사람은 없어?"


 고등학생 땐 몰랐다. 커피소년의 '장가갈 수 있을까.'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내가 될 줄은. 혼자서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예고없이 날아오는 썸은 없냐는 질문 앞에 작아지곤 했다. 그땐 연애라는 것이 내 삶에 남겨진 퍼즐 한 조각 같다고 느껴졌다.


 방황했던 나날 속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서 답을 찾고자 했지만 부질없었다. 점점 스스로에게 염증이 났고 흔히 말하는 현타가 왔다.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낼줄 알게 됐다고 생각될 즈음 기회가 생겼다. 오랜만의 소개팅이었다. 절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기대가 적어야 실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했다. 긴장을 풀기 위해 주변 책방이라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모두 휴일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자동차 유리문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수없이 옷매무새를 살폈다.


 불쑥, 그녀가 인사를 건넸다.


 '밝다.'라는 말로 설명해야겠다. 걱정과 달리 어려운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좋아하는 고기를 남겨두고 내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사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저녁을 먹고 적당한 장소를 찾다 예쁜 산책길을 걸었다. 시원한 밤공기도, 오가는 사람들의 풍경도 좋았다.


 우리가 향한곳은 서로의 추억이 담겨있을 대학로 술집이었다. 술을 한 잔씩 주고받으며 각자의 이상형을 물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모든 신경이 그녀를 향해 기울어졌다. 마음에 든다는 말은 건네지 않았지만 내 표정과 몸짓과 말투는 이미 그녀가 좋다고 말하고 있었다.


감정의 공명 덕분일까,

약속했다는 듯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다.


"근데, 너무 내 이야기만 했나? 목이 아파."

"정말? 나도 목이 아픈데!."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목이 아프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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