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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타임 Nov 05. 2021

나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

응답하라! 2011

 2011년. 그해는 전남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하던 시절이었다. "전남고등학교면 전남 어디에 있는 학교야?"라고 묻는 이에게 광주광역시 상무지구 한복판에 위치한 (급식이 환장할 정도로 맛있는) 조예 깊은 학교라고 소개한다.


 그런 학생이었다. 쉬는 시간 조용히 앉아 수학 문제를 풀고 있던, 야자시간 몰래 가을방학 노래를 들으며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 지던 이와의 추억을 달래던, 종종 떡대 큰 녀석들이 급식 줄을 새치기할 때면 뒤통수를 세 방정도 갈기는 상상을 하다가 분노를 삭이곤 했던 밤톨이.


 2학년이 되자 운동장을 차지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렇게 찾아온 문과vs이과 축구 개막전에서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린 본인은 수년간 갈고닦아온 팬텀 드리블과 인자기 급 기술을 선보였고 400명 관중의 환호성 속에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어느새 문과 축구의 자존심이 된 나에게 모르는 녀석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새치기하던 떡대 녀석도 "네가 그때 봤던 광식이냐."며 상냥한 표정으로 급식 줄을 양보했다. 별안간 뿜뿜해진 자신감을 안고 반장선거에도 나갔고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담임선생님을 설득해 열었던 야자시간 피자파티는 민심을 얻기 충분했고(역시 피자는 피자스쿨!) 학우들의 학업 스트레스 해결을 위해 교실문을 걸어 잠그고 당구장에 가느라 눈물 젖은 빠따를 맞기도 했다. 축제 때 나간 미스유니버스에서 김태희 뺨칠까 말까 한 여장에 성공해 우승을 거머쥐었다. 돌이켜보니 참 열정적으로 살았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2021, 수학 문제보다  어려운 인생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난이도는 늘어도 내 성장은 더딘 것만 같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만큼 힘에 겨운 일들을 만나면 부모님의 등 뒤로 숨기도 한다. 그마저도 할 수 없으면 이 한 몸 바쳐 버티는 수 밖에...


10  ''님이 내게 묻는다.


"지금 2011년인데, 오늘도 이과한테 축구 졌음."

"ㅎㅎ. 네가 못해서 그런거야."

"뭐라는 겨.. ㅎㅎ 근데 너 지금 뭐함?"

"궁금하지?. 근데  아직도 군인이다. 심지어 내년까지."

"ㄷㄷ."

" 맞다,  결혼해."

"ㄷㄷㄷㄷ...! 신부는 예쁨?"

"ㅇㅇ, 진짜 예뻐(그렇다고 해야 살 수 있어.)."

"ㅇㅇ, 그럼 됐음. 뭐 해줄 말 없음?"

"너무 걱정마. 아무튼 살만해."


10년 뒤 '나'님에게 묻는다.


"지금 2021년인데,  언제쯤 괜찮아져?"

";;;;;;;"

"지낼만해?  지금 뭐해야 돼?"

"........."


 만날  없기도 하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미래의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은 결국 하나가 아닐까.


"잘하고 있어, 다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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