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은 모습
어린시절 하루의 대부분을 운동장에서 보냈다. 2002년 월드컵의 감동에 취해 장래희망은 축구선수였고 여느 친구들처럼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니었기에 학교가 끝나면 해가 질 때까지 공을 차고 들어왔다.
어느 날,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너 축구 좋아하니?"
"네. 축구선수 할건데요"
"여기서 축구해서는 축구선수가 될 수 없어."
"아저씨가 뭔데요???"
"축구단에 들어가서 축구를 배워야지! 아빠 번호가 뭐야?"
유소년축구단에 들어가면 축구를 잘하게 된다는 말과 종종 애버랜드에 가서 놀이기구도 탈 수 있다는 말이 솔깃했지만 무엇보다 여기서는 절대 축구선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찔렀다.
마음이 조급해진 그날, 아빠에게 달려가 축구를 시켜달라고 했고 마침 타이밍 좋게 전화를 걸었던 코치는 아빠의 욕을 한 바가지 먹었다.
코치에게 버럭 성질을 내던 모습을 뒤로하고 아빠는 차분히 나를 설득했다. 운동을 한다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며 운동선수는 발이 빨라야하는데 아빠는 매번 달리기 꼴찌였고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나도 크게 달라질 수 없다는 거였다.
냉정한 시각에서 말하는 아빠의 모습과 하고 싶다고 정한 일을 포기해야한다는 두려움에 열심히 떼를 썼다. 아빠는 그때마다 주변에 정말 축구를 시킬만 한 지 물었고 몇 일간의 설득이 이어졌다.
결국, 아빠의 끈질긴 대화 끝에 토요일마다 하는 동네 축구클럽을 보내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자연스레 꿈이었던 축구는 취미가 되었고 지금은 그때 취미 정도로 남겨두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빠는 내가 축구시켜달라고 조른 일을 가장 속썩인 사건으로 회자한다. 맞다. 나는 깊었던 아빠의 한숨을 기억한다. 감사한 건 숱한 한숨에도 불구하고 매를 들며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로지 대화로 나를 설득했다.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28년, 그의 한숨을 발견하는 일들이 늘어간다. 어쩌면 몰랐던 아빠의 한숨을 이제야 알아차리는 것 같다.
언제나 진지하게 고민하며 내뱉는 그의 한숨.
나는 그의 한숨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