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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타임 Jun 03. 2022

나는 기저귀 갈듯 살려한다

 아이가 태어난 지 2주.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는 생명체를 데려오면서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첫 고민은 아이의 엉덩이에 빨갛게 일어난 발진이었다. 여린 피부에 기저귀가 맞지 않아서 생긴 것이었다. 고민할 새 없이 천기저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오줌을 쌀 때마다 새로운 천기저귀로 갈아야 하고 똥기저귀는 손세탁을 한 후 다시 세탁기에 돌려 햇빛에 말려야 한다. 만일 제 때 빨래를 돌리지 않으면 기저귀를 갈아주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기저귀를 성실하게 세탁하는 일보다 힘들었던 건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이었다. 작디작은 녀석의 울음소리와 거침없는 손짓 발짓이 정신을 어벙 벙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기저귀를 갈아보기에 얼마만큼 다리를 들어 올려야 하는지 어떤 길이로 천기저귀를 접어두어야 하는지 왜 자꾸 대변이 옆으로 세서 빨랫감이 늘어나는 건지 모든 것이 당황스러웠다.


 며칠 동안 단련의 시간을 거친 덕분인지 이젠 몇 초만에 뚝딱 갈아주는 경지에 이르렀다. 내 아이가 잘 먹고 잘 싸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기저귀 가는 일을 반복하며 생각했다. 앞으로 기다리는 모든 일이 여기에 통하지 않을까. 처음엔 미숙하지만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면 자연스레 몸이 알게 되는 것.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한결 가볍다고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난처함,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어깨는 무거워지고 마음은 분주해진 나의 삶. 그저 기저귀 갈듯 덤덤하고 묵묵히 해나가다 보면 어느샌가 삶의 달인이 되어있겠지.


 그래서, 나는 기저귀 갈듯 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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