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고백타임

애들아, 선생님 군대 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명확해지는 답

by 식이타임
"정말로 애들이 좋아서 선생님이 된 건 아니죠?"


언제나 나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당연하죠!"라고 하기엔 뭔가 오글거리고...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대답은 "애들은 집에 갈 때가 제일 예뻐요"였다.


학창 시절, 멋진 스승들을 만나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원하던 대학에 갔고 해마다 몇 차례 학교로 실습을 갔다. 아이들과 지내는 데 큰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나는 자연스레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딱히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했지만.


선생님이랑 소풍 가자!


두 번째 담임을 맡았던 해였다.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었던 군대를 가야만 했다. 이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한 학기. 어떻게 하면 1년 같은 한 학기를 보낼 수 있을까?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가장 야심 차게 준비한 건 아이들과 떠나는 작은 소풍이었다. 아이들이 가고 싶었던 방탈출 카페, 롤러장, 놀이공원을 갔다. 가장 원했던 건 우리 집이었지만 차마 감당할 자신이 없어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는 치킨가게를 가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작은 소풍을 궁리하던 어느 날, 야구장에서 아이들을 초대한다는 공문이 왔다. 그중 가슴을 뛰게 만드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시구, 시타 사연을 받습니다.'


시구는 유명인사나 연예인이 많이 하는 거 아닌가? 눈을 번뜩이며 50자 이내로 정해진 사연 응모에 승부를 걸었다.

이제 곧 군대에 가는데 아이들은 아직 모르고 있어요. 한 학기밖에 보내지 못하는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습니다. 참고로, 저희 반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00 응원가를 부르고 빗자루를 방망이 삼아 휘두를 정도로 야구에 환장합니다!

간절함 덕분이었을까? 사연에 당첨되었다.


"가즈아!"

우리 반 아이들을 데리고 우르르 야구장에 갔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반 아이와 시구, 시타를 했다. 관중들에게 내가 응모했던 사연이 소개되었다. 흥분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신나게 이야기하고 떠드느라 선생님이 군대 간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방학식이 다가왔다. 언제 말해야 하지? 마지막 날에 말하는 건 너무 갑작스러울 것 같고. 아이들에게 준비의 시간을 주고자 3일을 남겨두고 말했다.


"애들아, 선생님 군대 간다!"


내가 군대에 다녀왔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녀석들이 "엥? 며칠 동안 가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상황 파악을 한 몇몇 아이들은 엉엉 울기 시작했다. "괜찮아 애들아." 라며 다른 친구들을 위로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었다.


'내가 최선을 다하긴 했나 봐!' 아이들의 우는 모습에 슬프기도 했지만 마음이 흡족했다. 이 맛에 선생님 하나보다. 2교시부터 흘린 눈물은 점심시간까지 이어졌다. 한없이 쏟아낸 눈물, 콧물 덕에 그날 급식은 짭짤했을 것 같다.


해가 두 번 바뀌었고 아이들은 4학년에서 6학년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씩 잊을만하면 전화가 온다. 여느 제자들처럼 꼭 여럿이 모였을 때 선생님 이야기가 나오다 보다.

"선생님!!!!!! 뭐해요!!!! 저희 지금 놀고 있어요!!"

"선생님, 안 힘들어요?"

"지금 어디예요? 학교로 놀러 오면 안 돼요??"

"나중에 다시 00초로 오실 거예요? 그럼 저 놀러 갈래요."


아이들은 내가 군인이니까 매일 같이 힘든 훈련을 하는 줄 안다. 걱정과는 반대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날이 많아 멋쩍게 대답한다.


"나름, 전쟁 같은 하루를 살고 있지!"


학교현장에 있는 친구들을 종종 만난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줌 수업과 현장수업을 병행하는 일,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고충들을 듣는다.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이지만 어느새 경력을 쌓아가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친구들이 조금은 부럽다.


이제 학교로 돌아가기까지 일 년 반. 하루빨리 아이들을 만나고 싶고 재밌는 수업을 하고픈 강렬한 갈증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나를 머뭇거리게 했던 질문 앞에 명확해진다.


"나는 확실하게 아이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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