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째 절기, 동지
지금은 스위치 하나로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힐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도 아무 때나 연락이 가능하다. 사실상 낮과 밤의 구분이 필요 없는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촛불, 화롯불에 의지하던 옛날에는 겨울의 긴 밤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
365일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오늘은 24절기 중 22번째인 '동지'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이 지나면 이제 무서웠던 밤은 점점 짧아지고 낮이 점점 길어지는 날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동지는 항상 음력 11월에 들어서 이런 이유로 과거 풍습에는 동지를 큰 명절로 취급했다고 한다. '작은설'로 여겨서 떡국 대신 마을 사람들끼리 붉은 팥죽을 쑤어 나누어 먹고 새해 농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조상들은 붉은색 팥의 기운이 귀신을 막아준다는 생각을 가져서 밤이 가장 긴 날인 동지에 액운을 막기 위해 팥죽을 먹어 왔다. 이 때문인지, 동지는 낮과 밤의 구분이 필요가 없어진 요즘에도 사람들이 흔히 아는 절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왜 팥일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아마도 대부분 나처럼 농사를 직접 지어 본 경험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팥 알갱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아도 팥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는지는 전혀 모를 것이다. 나도 오늘 검색을 해보다가 처음 알았다.
팥(학명: Vigna angularis)은 콩목 콩과 식물로 한해살이식물이다.
팥은 콩과식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잘 아는 꼬투리에 알알이 들어 맺힌다. 팥 꼬투리 사진을 보고서야 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속담이 생겼는지 알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왜 하필 콩이랑 팥일까?' 싶었는데, 두 작물 모두 꼬투리에 담겨있으니까 심은 것을 기억해야지만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아는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팥은 한해살이 식물로 파종 후 팥을 수확하기까지 2-3개월이 걸리며, 아무 때나 심어도 수확이 가능하지만 한국에서는 보통 가을 파종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 겨울 직전에 팥을 수확하게 되고, 귀신을 물리치려면 '붉은색'이 필요했기 때문에 조상들은 동짓날 호박죽이나 다른 죽이 아닌 '팥죽'을 먹게 된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는 '팥'하면 팥보다는 조경수로 흔히 쓰이는 팥꽃나무나 팥배나무가 먼저 떠오른다.
팥꽃나무(학명: Wikstroemia genkwa)는 팥꽃나무과 팥꽃나무목으로 꽃이 필 때 색이 팥색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처음에 팥을 잘 모를 때에는 팥꽃과 비슷한 꽃이 펴서 팥꽃나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팥꽃은 노란색이고 그 생김새도 전혀 다르다. 사진을 한 번 보고 나니 팥꽃나무의 이름 유래가 더 이상 헷갈리지 않게 되었다.
팥배나무(학명: Aria alnifolia)는 장미과 마가목속으로 팥알 같은 작고 붉은 열매가 열리고, 배꽃과 비슷한 꽃이 맺힌다 하여 이름이 지어졌다.
5월에 하얀 배꽃, 벚꽃과 생김새가 비슷한 꽃이 펴서 아주 예쁘다. 가을에는 빨간 열매가 달리는데, 낙엽이 지더라도 열매가 달린 채로 겨울을 나기 때문에 가지에 달린 빨간 열매가 황량한 겨울에 시선을 강탈한다.
도심에서 팥꽃은 보기 무지 어렵지만, 팥꽃나무와 팥배나무는 관심만 가진다면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나무이다. 그래서 동지 팥죽을 핑계 삼아 한 번 소개하고 싶었다.
다들 팥죽을 못 챙겨드셨더라도 단팥빵이라도 드셨길 바라며, 다가오는 2024년은 건강하고 무탈한 한 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