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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는 게 맞는 걸까 4

바람 잘 날 없는 곳

by 식물리에

오늘은 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병원을 간다


12:09 이제는 내 얼굴을 다 알아서 병원을 들어서자마자 '무무 보러 오셨어요?'라는 인사를 주신다. 첫 글에서 말한 약을 제조하는 곳 같은 데스크 뒤편으로 들어갔다 오신다. 보통은 한 1-2분 정도 기다렸다가 들어오라고 하는데(왜 바로 못 들어가는지도 궁금하다) 오늘은 소변을 봐서 패드를 교체할 동안 기다려 달라고 한다.


속상하다.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 오줌을 싼 건 아닐 테고, 그 좁은 입원 칸에서 오줌이 흥건한 채로 얼마나 있었던 걸까. 바로바로 갈아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오기 직전에 갈아주니 내가 오지 않았으면 언제 갈아줬을까 싶다.


이제 들어와도 된다는 말에 얼른 들어가니 무무가 킁킁대며 인사를 해준다. 엄청 그루밍을 하고 싶다보다. 넥카라로 불편할 텐데 목을 꺾어 뒷다리와 꼬리를 그루밍한다. 닦아주고 싶었으나 무무만큼 쫄보인 나는 괜히 싫어하는 곳을 건드릴까 마음만 태운다. 밥은 또 조금만 먹었다고 한다. 있다가 저녁은 제가 주고 가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첫 면회를 마쳤다.


14:40 무무 두 번째 면회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다가오신다. 무무가 밥을 적게 먹는데 어제도 보호자 분이 주신 밥은 꽤 먹었으니 지금 한 번 지금 줘보겠냐고 해서 그러겠다 했다. 이럴 거면 집에서 케어하고 매일 병원을 오는 게 나았으려나 싶다. 두 종류의 습식 사료 중 한 종류를 한 숟가락 정도만 남기고 다 먹었다. 지시한 대로 남은 사료 그릇은 뒤에 테이블에 두고, 그루밍을 못 하는 무무 대신 입 주변을 닦아주고 나왔다.


16:30 오늘은 일이 있어 세 번째 면회를 조금 빨리했다. 턱과 볼을 실컷 긁어주고 나오는데, 나를 부른다. 혹시 아까 밥 얼마나 먹었냐고 묻는다. 순간 화가 났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밥그릇 체크도 안 하고 치운건가.

여기서는 무무 진료차트가 있고 무무 체온, 밥 먹은 양, 보호자 면회시간까지 다 수기로 적는다. 심지어 내가 A라는 분에게 무무에 대해 질문 한 내용을 B라는 분이 알고 있는 걸 보면 내가 어떤 질문을 하는 지도 다 적어 두고 보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무무가 밥을 얼마나 먹었는지 이제야 체크를 한다. 나를 직접 만나지 못했다면 저녁을 주는 6시에 나에게 확인 전화를 했을까 궁금해진다.


20:50 일을 마치고 서둘러 면회 마감 직전에 병원에

도착했다. 무무에게 밥을 주려는데 갑자기 무무가 오줌을 쌌다. 갑자기 누가 튀어와서 패드를 갈아주겠다고 한다(말 그대로 갑자기 뒤에 새 배변패드를 가지고 와있었다). 반응속도에 놀라면서 왠지 모르게 이 사람들도 내가 자주 오는 게 좋지만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밥을 마저 주고 더 있다 가고 싶은 남편을 잡아끌어 집으로 왔다.


내일은 무무가 재수술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날이다. 비록 주치의는 나와 몇 시에 만날지 아직 약속을 정해주지 않았지만 말이다. 24시간 병원처럼 나도 24시간 대기하며 무작정 기다리는 게 보호자의 일이겠거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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